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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28. 2020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걸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회사에 다닐 때 즐겁게 하던 북클럽이 있었다. 친구가 클럽장인 클럽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참가비가 부담스러워서 관두었다. 그 클럽이 아니라도 나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또 다른 독서 스터디도 참여하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새로운 회사를 곧 찾을 줄 알았었다. 최대 1년이라 생각했던 나의 두 번째 직업찾기는 어쩌다보니 3년이나 지나 버렸다. 이러다가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올해 코로나 때문에 ‘중요한 일 없으면’ 나가지 않게 된 백수는 집에서만 있게 되었다. 소모임 북스터디 또한 그만둔지 오래였다. 사람이 그리웠고 책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던 나는 친구가 하는 모임에 다시 등록을 했다. 한 달에 5만원씩 한 분기에 20만원. 이렇다 할 수입원이 없는 나에게는 꽤 큰 돈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외출도 안 하니 1년에 이 정도는 써도 된다는 합리화와 함께 한 분기만 하고 그만두자며 나와 약속을 했다.

그리고 당시에 북클럽에 꽤 충동적으로 등록한 가장 큰 이유는 클럽장인 친구가 모임에서 상처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클럽회원이 클럽에 대해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시하다 결국 관두었다. 클럽회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 친구의 행동에 클럽장인 친구는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가서 힘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치를 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던 내가 생각해 낸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내가 하고 싶었던 거면서.     

한 분기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는 걸 목표로 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면접이나 시험 같은 예기지 않은 일은 생기지 않았다. 목표였던 전체참석은 해냈지만 2020년이 끝나가도록 나는 여전히 백수였다. 처음 내가 나와 내걸었던 조건을 지키기 위해 그만둘 생각으로 친구에게 다음 분기는 신청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나의 통보가 조금 갑작스러워 보였다. 즐겁게 클럽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관둔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꽤 열성적인(?) 회원이었고, 말도 많이 하는 편이었으며 새로 만난 클럽 회원들의 면면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친구에게 일러둔 터였다.     


친구의 충격이 메시지 너머로도 조금 전해진 지 하루인가 이틀 후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새벽 두시의 메시지였다. 본인이 클럽장으로 활동하며 쌓인 클럽 포인트가 있으니 그걸 써서 다음 분기를 등록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사람과 책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 즐거움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조금 염치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 제안을 수락하고도 마음이 불편하거나 불안하지가 않았다. 억지로 불편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해보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친구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우리 관계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예전의 나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불편해했을 거였다. 생각해봤다. 도움을 받기 싫다고 생각했던 건 실은 내가 아무에게도 도움주지 않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귀찮고 방해가 될 지도 모르는 관계를 쌓기가 두려웠던 건? 내 자존심 때문에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서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건 착각 혹은 환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을 받고 살아왔을 터였다. 이미 그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들에게 이번 일 말고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듯이.     


친구에게 새벽 두시에 문자를 받고 아침 여섯시까지 자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요즘 엉망이었다. 곧 나이는 한 살 더 먹는데 나는 3년이 넘게 제자리였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크리스마스 즈음 일어난 개인적인 힘든 일들 때문에 올해도 혹시나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불안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에만 처박혀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괴감과 죄책감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이미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혼자 질질 짜며 운 이후였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걸 더 일찍 알았다면 나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으려나 싶었다. 조건 없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봐주는 이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면 내내 나 자신에게 좀 더 잘해주었으려나. 언젠가 이 친구에 대해 일기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마음을 보여준다니 그렇다면 나도 좀 괜찮은 사람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마음을 받은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다. 혹시나 내가 또 나를 미워하고 홀대한다면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은 잘 관리된 짐에서 결정된다.’ 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 마음을 받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면 내가 짐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짐이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이번에 그 마음을 받고도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던 건 그런 마음들을 주고받는 데에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그 친구에게도 물론. 꼭 똑같은 모양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마음을 잘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익숙지 않던 나는 그나마 주는 데는 조금 익숙해졌지만 받는 데는 익숙지가 않았다. 어색하고, 뚝딱대고, 황송하고(?). 이 정도 일로 친구를 이전과 달리 대하는 건 친구가 원하는 일이 아닐 거였다. 난 좀 뻔뻔해지기로 했다. 즐겁게 북클럽 활동을 하고, 꼭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지만 언젠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돼야지. 친구가 말하는 부자는 아마 이번 생엔 불가할 것 같지만 부자가 꼭 되지 않더라도 좋은 마음을 많이 나누면서 즐겁게 살 수는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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