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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10. 2020

불행이 삶을 덮칠 때

-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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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다. 김연수가 쓴 백석에 관한 이야기라니.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이었고, 관련 설명도 조금 부족한 듯 느껴졌다. 해방 후 북한의 상황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문득문득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몰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 시절이 그려지지 않았음에도 백석의 감정에는 몰입할 수 있었다. 세상이 바뀌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무너지고,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죽거나 배신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석의 감정에 쉬이 몰입하게 됐다. 둘째로는 문장마다 느껴지는 작가의 의지 때문이었다. 유독 밑줄 긋게 되는 문장이 많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언가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는 듯 보였다. 모호하지만 메시지는 마음에 와 닿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차라리 시 같았다. 책 뒤편에 있던 추천사에 최은영 작가가 쓴 ‘여러 번 읽게 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 이유가 모호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시절의 북한의 백석에 대해 남한의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혹은 알면서도 적을 수 없었거나.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백석이 죽기 전 7년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름 조마조마하며 읽었던 것 같다. 백석이 언제 죽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책에 나온 일곱 해가 지난 후에도 백석은 삼십 년을 넘게 더 살다 죽는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었던 일곱 해는 작가가 시를 적었던 마지막 일곱 해였다. 김연수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백석은 시를 쓰지 못하게 된 이후에도 더 살았다고, 죽을 수 있었는데 살았다고. 죽음의 가능성을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인터뷰에 놀랐는데 책을 읽고 나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 시대에는 죽는 게 쉬웠을 수도 있다. 죽임을 당하거나, 죽는 것보다 못하게 되거나. 그럴 수 있었는데 살았으니까 놀라운 일이었다. 시를 잃고도, 살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34년이나 더 살았다.  


김연수는 이 책을 통해 불행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했다. 내가 다른 책들을 통해 느낀 김연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야 마는.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째서 갑자기 불행을 보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 백석을 통해 내가 느낀 불행은 ‘무력감’이었다. 어쩌면 백석이 겪은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 혹은 감정들을 지난 몇 년간 많은 일들을 통해 많은 예술인들이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굳이 예술인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겪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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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강한 사람도 망가뜨리곤 해." 반 고흐의 생애를 다룬 영화 ‘러빙 빈센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영화를 본 지 3년이 다 되어 가고, 정작 영화의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유독 저 대사만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평생 이름 없는 작가로 살다가 죽은 고흐에 대해 고흐의 친구가 말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망가지는 것이었다. 불행이 내 삶을 덮쳤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달라졌다.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던 엄마가 내 마음 따위는 상관없이 성적과 돈을 최우선 가치로 두게 되었을 때, 자신만만하던 아빠가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낄 만큼 열등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망가진 이후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망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만은 안 된다고. 엄마처럼, 아빠처럼 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김연수는 말한다. 망가지고도 삼십 년이나 더 산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망가지고도 삶을 지속하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니겠냐고. 그래서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백석에게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여 준 것 같다. 모든 것을 잃고도 34년이나 더 살게 한 무엇을 백석이 만났으리라고 짐작 혹은 소망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내 원망했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당신들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 사는 거냐고. 불행에도 불구하고 평생 최선을 다해 산 내 부모를 이해할 수 없을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마음이다.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느냐고 탓하는 대신, 그렇게 망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뭐라도 잡고 -그건 아마도 우리였겠지- 살아줘서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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