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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Mar 03. 2021

이별 그놈 참,,,

주접과 눈물없이 이별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면

누가 보면 대단한 세기의 사랑에 실연이라도 한 듯한 제목이지만 실제로 내가 이별한 것은 두 달 남짓 몸담은 학원과 한 달 남짓 가르친 아이들이다. 1월 중순부터 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유초등부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아이들과 잘 맞았다.

며칠 전 예기치 못한 다른 회사의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1년이 넘게 많은 회사에 자소서를 썼지만 늘 떨어졌기에 놀랐다. 긴 백수생활에 프리랜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도 해보자 하고 마음을 먹게 되었었다. 학원 일이 생각보다 적성에도 맞고 즐거웠지만 처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목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오랫동안 원하던 일로 회사에 합격했기에 당연히 회사에 가는 것이 옳았다. 금요일 밤에 통보를 받고 주말 내내 고민했다. 답은 정해져 있으나 그 답으로 어떻게 갈지가 고민이었다. 고작 한 달 남짓 가르친 아이들의 어머님께 또다시 선생님이 바뀔 거라 말하기도 어려웠고, 여러모로 잘해준 학원 측에 다른 일을 해야겠으니 관두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주말 내내 고민을 하느라 밥도 먹지 않고, 잠도 못 잤다. 뭐가 그리 고민인지 나도 잘 몰랐다. 휴일이 모두 지나고 오늘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과 헤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인데 나는 아이들과 너무 정이 들어버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고,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는 것도 좋았다. 친구들의 말대로 아이들과 정신연령이 맞아서 잘 맞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가지 마세요.’하며 폭 안기던 아이. 다음 주에도 올 거냐며 손가락 약속을 걸던 아이. 말은 없지만 조용히 잘 따라오던 아이. 똑똑하진 않아도 다른 선생님이 아니라 나만 유독 따르던 아이. 하나하나가 눈에 밟혔다. 소규모 수업이라 더 정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처음으로 아이들과 이별을 했다. 학원에 가기 전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어서 엄마의 걱정 어린 눈빛을 받았다. 아침부터 울며불며 죽겠다고 징징대다 갔고, 결국 아이들과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몇 명과 생각보다 잘 이별을 하고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지막 아이를 만났다. 유독 정이 든 아이였다. 한 시간 동안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선생님이 일이 있어서 다음 주부터 못 올 것 같아. 앞으로 다른 선생님 하고도 수업 잘하고.. “ 혼자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라도 된 양 말을 잇는데 아이가 말했다. ”저 이거 알아요. 헤어지는 거.. “ 그 순간부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렁한 채로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눈물이 팡하고 터졌다. 엉엉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 집에 오자 동생이 나를 보고 나지막이 한 마디 했다.  “쌩쑈를 한다, 쌩쑈를 해.”


친구 몇몇에게 고민 상담을 하자 대체 고민거리도 아닌 걸로 왜그리 고민을 하냐고 타박만 받았다. 회사에 취업한 거면 잘 된 일이라고. 아이들은 새 선생님이 오면 신경도 안 쓸 거라고. 무엇보다 한 달 뒤면 다 잊힐 일이라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시간밖에는 답이 없다는 말이잖아..'라는 말처럼 지금 너무도 힘이 든다. (이 말은 첫 이별 이후 나를 달래는 친구들에게 내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제 꼬물꼬물한 손가락과 앵알대는 목소리들을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 이런 말을 하며 울자 친구는 대체 왜 그런 상상을 하냐고 했지만 상상이 되는 걸 어떡하냐는 말이다. 이렇게 온갖 주접을 떨고도 아직 몇 번의 이별이 더 남아있다. 엄마는 주접인 걸 아니 다행이라고 했지만 전혀 다행이지 않다. 여전히 마음 한 쪽은 찌르르하고, 아직 이별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헤어지는 걸 유독 싫어했다. 분리불안이라는 말이 요새는 많이 들리지만 내가 어릴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엄마와 떨어지는 걸 유독 싫어했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가 없으면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붙잡고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가 없으면 아파트를 돌며 엄마를 찾아 울어댔다. 우는 나를 경비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달랜 일만 해도 여러 번이다. 이런 일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지속했다.

조금 크면서 분리불안의 증상이 눈으로 드러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첫 이별을 겪기 전까지는. 매달림과 집착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했던 첫 이별 이후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별이 무서워서 연애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사람이 나다.     

연애를 오래 쉬면서, 또 백수생활로 주변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잊고 있었는데 오늘 또 깨달았다. 나는 정말이지 헤어지는 걸 힘들어한다. 내가 게임 캐릭터라면 능력치 중에서 가장 낮은 능력치가 아마 ‘이별’ 일터다.


큰일이다. 아직 이번 주만 해도 여러 번의 이별이 남아있고, 내 인생에는 더 많은 이별이 남아있는데. 오늘 밤도 걱정으로 잠 못 이루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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