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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Sep 29. 2021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일들을 예측할 수는 없다.

다사다난한 나의 독립.. 아니, 전세계약기

독립을 준비 중이다. 독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십 대 중반이지만 용기를 내어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건 올해이니 자그마치 5년이 넘게 걸렸다. 어쨌든 집을 구하고, 엄마와 아빠를 설득하고, 대출을 진행하는 등등의 일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나무늘보같이 늘어져있고 느릿느릿한 나이지만, 가끔 어떤 이슈가 벌어지면 누구보다 빠릿빠릿하게 행동하곤 한다. 물론 그 이슈 한정이라는 점이 단점이다.     


가장 두려웠던 건 전세사기였다. 대학생 때부터 많은 전월세집을 이사를 다닌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고,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신조는 ‘인생은 모르는 거다.’이다. 불운을 몰고 다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기에 전세 사기 안 당하는 법, 전세 계약 시 주의할 점 등등을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다.      


덕분에 한 집에서 25년 넘게 산 엄마보다 전월세 계약과 진행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자부하게 되었다. 집도 충분히 보고 여러 친구들에게 자문도 구한 끝에 적당한 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친구들 말로는 보통은 부동산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며, 대출만 조금 신경 쓰면 될 거라고 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도 1억씩 빌려주는 카카오 대출도 있다고, 이제 힘든 건 다 끝났다고 말했다. 


생각과 다르게 일이 진행된다고 처음 느낀 건 처음과 달라진 집주인의 태도였다. 분명 부동산에서 처음 집을 볼 때 집주인이 좋은 분이라고,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냉장고도 해주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을 계약하겠다고 하자 집주인은 냉장고도 주지 않고, 관리비도 처음 이야기한 것과 다르게 더 달라고 하고, 전세금을 낮추고 월세를 올려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계약을 파투 내려고 했다. (그랬어야 했나?) 하지만 부동산 아저씨가 자기를 한 번만 믿어달라며, 이전 세입자가 월세도 안 내고 고생을 시켜서 깐깐해지신 것 같다며 양해를 부탁했다. 결국 수용 가능한 선에서 합의가 되었고, 계약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계약서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부동산 아저씨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야기한 입주날짜부터 한 달이나 미뤄진 날로 진행하기를 원했고(알고 보니 집주인이 원하는 날짜였다.), 근저당이 없다고 했던 말도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다른 호수에도 다 근저당이 있지만 대출도 나왔고 잘 산다고 해서 같은 건물의 다른 호수의 등기부등본도 떼 봤더니 다른 집은 없고 그 집에만 있더라. 이 외에도 말도 안 되는 자잘하게 속 터지는 말 바꾸기와 세입자인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듯한 행동들이 있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했다면 이해하고 넘어갔을 일들도 굳이 거짓말을 하며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다. 


전세금을 낮춘 걸로 보아서는 내가 1순위로 우려하던 전세금 사기는 아니겠으나, 집주인이 외국에 있어 얼굴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아저씨도 미덥지 못하는데 일을 진행하는 것이 맞나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미 가계약금으로 내 피 같은 돈을 보낸 상황이었기에 어차피 계약만 진행하면 다시 볼 일이 크게 있겠나 싶어서 계약서를 쓰고 복비도 보냈다.      


그리고 나의 이 생각은 아주 큰 패착이었다. 대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서류가 필요했고, 집주인이 외국에 있어서 더 많은 서류가 필요했다. 나는 부동산 아저씨가 준비해 준 서류를 당당히 들고 갔는데, 은행에서는 원본이 아니라고 안 된다고 했다. 부동산 아저씨에게 이 사실을 전했더니 집주인이 이전에는 그걸로 됐는데 왜 이 은행만 원본을 요구하냐고 했다며 되레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전부터 쌓인 나의 화가 폭발했다. 성인이 되고 밖에서 이렇게 소리 지르며 화낸 적은 처음이었다. 이전부터 말을 바꿔서 불안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대출에도 시간이 걸리는데 빨리 일처리는 하지 않고 집주인의 말이 법도 아닌데 집주인의 말만 들어주시고 계시면 어떻게 하냐고 따졌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말 바꾸기에 대한 사과도 없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할 만큼 했다는 식이었다. 아빠는 말도 안 된다며 계약을 해지하라고 난리였다. 결국 마지막 방책으로 내가 부동산 대표에게 전화를 한 후에야 일이 해결되었다.     


집주인은 우편으로 원본을 보내주었고, 대출은 신청했지만 놀랍게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소소한 문제가 조금 남아있다. 이렇게 자잘한 일들로 계약이 지연되고, 사람 진을 빠지게 하는 건 처음 본다며 친구들도 혀를 내둘렀다. 부동산 아저씨가 문제인건지, 집주인이 외국에 있어서 그런 건지, 내가 처음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서울에 혼자서 10년씩 산 친구들도 전세보증보험이라던가 부동산 계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도 잘 사는데, 나는 철저히 준비해도 이렇게 힘이 든다.     


아직도 ‘독립’까지는 꽤 여러 산이 남아있는데, 그래도 이번 일을 경험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아무리 치열하게 준비하고 많은 가능성을 점쳐보아도 모든 미래를 내가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걱정이 많고 꼼꼼한 나는 늘 많은 가능성들을 염두에 둔다. 오히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일수록 더 많은 플랜 B를 고심하고,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을 돌아보면 한 번도 내가 예측했던 대로 되었던 적은 없었다. 아무 탈 없이 지나간 건 기억에 안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생은 내 조그만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수한 우연과 사건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수많은 가능성들 중에 한 가지를 맞출 수 있을까. 점쟁이라도 그건 못할 것이다.     


나는 인생이 늘 두렵고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일들이 일어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인생에 뒤통수를 맞는 일은 언제나 당황스럽고 아팠으니까. 독립을 생각만 하고 시도하는데 5년이 넘게 걸린 이유도 겁이 나서였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예상하는 일들 중에 많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는 일들은 예상 밖인 경우가 많을 거였다. 굳이 한 치 앞도 모를 미래를 쓸데없이 걱정하고 겁낼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어떤 일이 있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멘탈과 누구라도 쳐 받을 수 있는 깡다구를 준비하는 게 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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