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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Dec 31. 2022

기꺼이 받아들이기

워킹맘의 시간

시어머니가 보온병에 건네주신 따뜻한 유자차 한 잔, 그 뭉클함이 오래간다. 유자차처럼.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아기는 따뜻하게 입혀서 나갔지만 미처 내 옷은 신경 쓰지 못한 탓에 코가 막히고 목이 간질간질해졌다. 코맹맹이 목소리를 듣고 챙겨주신 유자차. 시어머니가 아니면 혼자 골골대며 있었겠지, 싶어서 감사함과 미안함이 범벅되어 코끝이 찡해졌다.


시댁에서 함께 산 것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기도 했고 나 역시도 초반에 복직과 아기의 어린이집 적응과 다른 육아방식 등으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함께 살아온 부모님이랑도 티격태격하는데, 살아온 환경이 다른 시댁에서 모든 게 다 맞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호르몬 주기가 왕성하게 급변하는 롤러코스터 시기가 되면 사소한 것에 괜히 섭섭하기도 하고 그랬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내가 내뿜는 기운에 저 며느리가 아주 독한 기운을 내뿜고 있구나,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나도 회사일에 적응하고, 두 돌이 다가오는 아기도 제법 집중하고 놀고 이해하고 안정이 되어가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그 전에는 힘들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타났다. 성격이 급하고 꽁한 나와는 다른 느긋하고 온화한 어머니의 성품. 그건 육아를 하면서도 드러난다.


기다려 줄 줄 아는 육아


어머니는 전공을 하거나 공부를 해서 머리로 아시는 게 아니라 원래 성품이 그렇기에 아기를 키우실 때도 그 성품대로 하신다. 물론 세대차이는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그런 육아의 유행(예를 들면 분을 바른다거나 하는..)이 아닌 아기의 욕구를 알고 기다려주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그 모습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는 대가족이 양육을 하게 되면 양육방식이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기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의 양육 방식과 반응에 맞춰 의사소통과 반응을 다양하게 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하고 뇌신경에 자극이 잘 된다고 한다.


그때 깨달았다.

나 혼자 고군분투하며 키우는 육아에서는 '일관성'이라는 큰 장점을 얻게 되지만 때로는 내가 줄 수 없는 부분도 있었겠다고. 나는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지만 어쩌면 아기에게 그 방식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고.


육아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각자의 양육방식이 모두 정답이 될 수도 있다고.


조금씩 안정되는 시기에 들어선 지금, 비록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찾아오겠지만- 시댁에서 함께 지내겠다던 그때의 결정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결정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나는 "아기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현재의 대가족 육아를 "견딘다(혹은 희생한다, 참는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선택한 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주어지지 않은 성격적 특성인 느긋함과 온화함, 그걸 본받아 강박을, 이론적 집착을, 육아방식에 옳고 그름이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서 편안하게 아이를 바라보기로 한다.


p.s. 그리고 pms 완화에 많은 도움을 준 흑염소에게 오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전과는 달리 감정기복이 줄어들고 다소 안정적인 한 달을 보냈는데, 나랑 반띵 해서 흑염소즙 먹은 언니도 그랬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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