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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Apr 19. 2024

결혼하면 내 인생이 없어질 것만 같아

결혼이 내 커리어를, 삶을 흐려지게 할지 두려워하고 있는 당신에게

다들 결혼을 늦게 하는 요즘이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친구들보다 결혼을 일찍 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결혼하면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설명하면 될까, 해피엔딩이라는 걸 알고 보는 드라마가 재미는 덜 할지언정 마음은 편한 것처럼 결혼 후 나의 일상은 그 하루가 어떤 하루였든 행복하게 마무리될 거라는 걸 아는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나를 꼭 껴안아 주는 사람 덕분에 나의 하루는 꽉 찬 행복감을 느끼며 끝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결혼에 대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과 10년 동안 연애할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었음에도 결혼을 하면 내 삶이 끝나는 것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가정상이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게 결혼은 육아를 동반한 삶의 변화였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 치매 돌봄 보조 9년 차 손녀, 누군가를 돌보면서 내 삶을 꾸려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육아의 즐거움은 할머니의 귀여움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엄마의 말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육아를 하면서 커리어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주변의 회사 선배들 이야기가 더 귀에 잘 들어왔다. 보통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육아하거나 두 명 모두 직장을 다니면서 한 명의 월급을 아이 도우미에게 주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차피 돈은 부부 중 한 명이 버는 셈인데 차라리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낫다고. 이러한 간접 경험들을 통해 자연스레 나는 육아를 하면서 커리어를, 나를 잃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결혼은 ‘내 커리어가 더 단단하게 쌓이고 나서야 결심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기업 마케터이던 나에게 회사의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담당할 기회가 생겼다. 큰 기업의 브랜드전략과 로고를 바꾸는 일은 수많은 예산과 수많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누구나 경험할 순 없는 일이었다. 빡센 업무강도 때문에 함께 일하던 분들이 퇴사하며 사원이었던 내가 담당자가 될 수밖에 없던 상황 속에서 번아웃을 겪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지만, 열심히 했다. 소위 말하는 ‘인정할 만한 커리어’를 쌓은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담당자로서 해내고 나서도, 나는 안심을 할 수 없었다. 그 프로젝트는 내 프로젝트가 아닌 회사의 프로젝트였고, 나는 담당자였지만 팀원일 뿐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본질적으로 회사 일이란 개개인의 고유성을 표현할 수 없고, 누군가 빈자리가 생겼을 때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어야 안정적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곳이니 아무리 일을 해도 안심할 만한 커리어의 완주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좋은 직장에 소속되면’, ‘내가 더 엄청난 프로젝트를 해내고 나면’처럼 커리어를 기준으로 결혼 시기를 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결혼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은 좋은 사람이 내 옆에 있을 때뿐이었다.


기업의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나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내가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커리어의 완주지점은 없다는 깨달음과 잦은 야근으로 인한 번아웃 때문에 시작한 심리상담 덕분이었으니까. 하루는 상담사분께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결혼이 마치 제가 잡고 있는 인생의 운전대를 놓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상담사분은 이렇게 물으셨다.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운전대를 뺏을 사람인가요?” “아니요” “그러면 돌아가면서 운전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시소처럼 가끔은 내가, 가끔은 네가 올라가는 관계, 서로 돌아가면서 운전하는 관계가 더 즐겁고, 오래갈 수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결혼 3년 차인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최대 성취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것이라고 말한다. 커리어가 아무리 좋아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결혼 상대를 잘 못 만나면 인생이 꼬이는 것만 봐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실제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성취인 것 같다. 결혼하거나 하지 않거나는 선택이지만 누군가 과거의 나처럼 결혼이 내 커리어를, 삶을 흐려지게 할지 두려워하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결혼하고 나는 내 인생을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 덕분에 더 나다워질 수 있었다고. 나로 인해서 너의 하루가, 너의 세상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함께 주고받으며 내 세상은 비로소 충분해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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