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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Apr 19. 2024

식물 잘 키우는 법

식물과 나를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

우리 집에는 식물들이 있다. 식물을 잘 키우게 생겼다며 주변에서 선물로 화분을 많이 주시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키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식물을 잘 키웠을 리가 없다. 선물 받은 화분들은 하나둘 비실비실해지기 시작했고, 집에 올 때마다 생을 달리하는 식물들을 보는 것은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식물 키우는 법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나무가 잘 성장하기까지 몇 가지 중요한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주변에 식물 키우는 법을 알려줄 정도의 식물 집사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식물이 자라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들이 창조주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우린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이니까. 그 생각은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이 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구나 라는 깨달음으로 연결됐다. 내가 깨달은 식물과 나를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물주기다. 물을 충분히, 화분 받침에 물이 빠져나올 때까지 주지 않으면 과한 습도(이하 ‘과습’)로 죽는다. 처음에 나는 ‘물을 많이 주면 과습이 될 거야’라는 두려움으로 물을 조금만 주었다. 하지만 과습은 물을 많이 줘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물을 애매하게 주어서 물과 노폐물이 흙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물을 줄 때 물이 화분 받침에 빠져나올 정도로 충분히 주어야 노폐물도 내보내고 흙에 물 길이 뚫려 식물의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나의 관심사에 충분히 물을 주어 왔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앞에 두며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남의 말들이 자기 안에 너무 많아져서, 정작 어떻게 살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돌아보면 나 또한 내가 갖고 있던 패션에 대한 관심을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무시하며 살아왔다. 결국 돌고 돌아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고 운영하는 지금, 나는 이제야 나의 관심사에 제대로 된 물주기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분갈이다. 식물들의 성장은 위보다 아래로 뿌리가 자라며 이루어진다. 그래서 어디에 뿌리내리는지가 참 중요하다. 물이 잘 빠지는 화분이 좋고, 때가 되면 화분을 더 큰 곳으로 바꿔주어야 더 클 수 있다. 분갈이할 때면 물이 잘 빠지도록 큰 돌을 먼저 깔고, 점점 작은 알갱이의 흙으로 화분을 채운다. 돌이켜보면 내게 첫 회사 소속팀은 물이 빠지지 않는 화분이었다. 입사 한 달 만에 퇴사를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시절, 나는 야간 대학원에 다니며 퇴근 후 패션학을 공부했다. 마치 분갈이를 하듯 직장인이라는 화분에서 대학원이라는 화분으로 나를 옮겨,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뿌리를 내리자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 덕분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날 수 있었고, 7년의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지치기다. 가지치기는 언뜻 보면 잔인한 행위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나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그냥 두면 위로만 자라지만 잘라주면 위로 자라나는 것을 멈춘다. 그 대신 가운데 줄기는 목질화가 되며 두꺼워지고 가지치기를 한 곳에 두 개의 가지가 새로 나게 되어 우리가 아는 나무의 수형이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이 너무 많았을 때 나는 마치 가지치기 되지 않은 채 위로만 한없이 자라나는 식물 같았다. 얇은 줄기 하나가 너무 많은 잎을 단 채 위태롭게 길어지고만 있었다. 퇴사한 지금 내겐 마케터와 브랜드 디자이너라는 두 가지 가지가 자라나고 있고, 나의 중심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다 생을 달리하여 어쩌다 보니 내가 키우는 식물들은 열매나 꽃이 없다. 그 사실이 내게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화려하게 꽃 피우고 열매 맺지 않아도, 열매가 자라지 않더라도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식물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티가 나는 성장이 아니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꾸준히 자라나는 것. 식물의 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창조주의 답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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