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사가 시간 쪼개서 매일 하(려고는 하)는 공부 루틴
평생 공부해야 하는 팔자를 어떻게든 즐겨보기 위한 나름의 발악입니다
케찹고백을 하자면 (MZ들이 쓰는 표현이라고 해서 외워봤습니다) 난 엉덩이 힘이 센 편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러니까,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도서관에 앉아 노트북 켜놓고 책 몇 권 펼쳐놓고 공부하는 일은 아무리 오래 해도 지겹지가 않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힐링될 때가 많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엉덩이 힘이 세다는 건 내 착각이었을 뿐. 난 그냥 공부하는 분위기가 좋았던 거다...ㅋ..나는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를 오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밑줄치고 0.5mm 펜으로 뭔가를 끄적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공부쟁이가 아니라 문구 덕후 펜 덕후 노트 덕후란 말이다. 바리바리 챙겨서 카페 갔는데 막상 펜과 공책이 없었을 때는 1시간도 못 버텼을 때 얻은 깨달음이다.
어쨌거나 통번역사로서 공부하는 분위기라도 좋아하는 건 다행인 것 같다. 통역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최신 용어나 표현 업데이트를 착실히 해야 하고, 일부러라도 회사 밖에서 한국어든 영어든 써 버릇해야 소위 말하는 '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30% 성실하고 70% 산만한 내가 쫌쫌따리로 하는 데일리 영어 공부 루틴을 소개해보겠다.
1. EBS 영어 라디오 프로그램 <최수진의 모닝스페셜> / 매일. 2~30분 컷
https://home.ebs.co.kr/morning/main/
공부 방법: 정리해 주신 표현들 중 추려내 노트에 적는다. 밑줄 친다. 까먹는다(ㅠ). 다음날 다시 적는다.
EBS에서 하는 월~일 오전 8~10시 라디오 프로그램. 하필 출근 시간에 해서 + 평일에 공부용으로 듣기에는 방송 시간이 다소 길어서 생방송을 듣지는 못하지만 홈페이지에 알짜배기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이 좋은 점은 제작진분들이 정말 부지런하게 표현을 정리해 주신다는 점이다. 계속 표현을 따라 적기만 해도 어느새 어라? 이거 며칠 전 기사에 보았던 표현인데? 싶을 때가 있다. 언어는 그렇게 초면이 구면이 되는 과정이 꼭 필요하기에 익숙한 표현일지라도 반복해서 정리하는 편이다. 표현 줍줍!! 제작진분들 코마워용.
2. 화상영어 플랫폼 링글 / 20분 or 40분 컷. 주 1회
공부 방법: 일주일 동안 놓고 있던 정줄을 다시 주워서 머리에 꽂는다. 30분 동안 교재를 휘리릭 읽고 관련 동영상도 보고 표현도 정리해 보고 대충 튜터에게 어떻게 요약할지 정리해 본다.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20분 or 40분 동안 사회성을 끌아모아 튜터와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을 무사히 마친다.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화상영어 플랫폼계의 샤넬이자 에르메스 링글. 비싸다. 비싼 값을 하기는 함. 특히 비기너가 아니라 어느 정도 유학 경험이 있거나 영어 관련 일을 하는 등 영어 실력이 중상위권은 되는 사람한테는 이만한 플랫폼이 없다. 타 화상영어 플랫폼 사용할 때는 자본주의 미소 짓고 있는 원어민 교사와 톤 앤 매너 맞추기 위해 억지 텐션 높인 다음에 아이해드시리얼포디너~~이런 얘기하다가 시간 다 가서 현타 오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힘든 적도 있었다. 그에 비해 링글은 일단 매회 본인이 직접 튜터를 고르기 때문에 자기 에너지에 맞는 튜터를 고르면 된다. 그리고 대부분 아직 대학생이라 그런지 자본주의 미소가 뭔지 모름. 찐 원어민 그 잡채.
그리고 링글의 또 좋은 점은 고퀄리티 교재다. 실제로 들었던 수업 교재 목록 중 일부인데, 특히 외국계 다니는 분들한테는 Business Practice 관련 교재가 짱짱이다. 나는 시장 동향 보고서 관련 번역을 자주 하는 데에 비해 이걸 통역할 일은 별로 없어서 교재 활용해서 차트 및 그래프 설명을 연습해 보면서 관련 표현들을 체화해보았다.
영어 실력이 상급이면 긴 지문이나 Advanced라고 표기된 교재를 고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그냥 Basic 레벨의 내용이 평이하고 짧은 지문을 고르는 것도 난 도움이 되었다. 왜냐면 이런 건 튜터랑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정적을 깨기 위해 온갖 응용력과 순발력을 발휘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영어는 위기의 순간에 는다...
(참고: 링글 관계자 아님. 안타깝게도 내돈내산임)
3.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펼쳐(만) 보기 / 집중력에 따라 1시간 or 1분 컷
공부 방법: 펼친다. 눈으로 따라간다. 인상적이거나 모르는 단어, 표현에 형광펜으로 예쁘게 밑줄을 긋는다. 재밌는 색칠 시간을 보낸다. 덮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영자 신문 중에서도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다. 모르는 단어와 표현이 너무 많아서 주로 영어를 좀 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 때 정신 차리기용으로 읽는 편이다. 모든 신문사가 그렇듯 온라인으로도 꽤 잘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PC로 볼 때 더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가끔 교보문고에서 실물 종이 잡지로 사서 읽곤 한다. 다만 워낙 난도가 높아서 그냥 다른 원서나 영자 신문으로 대체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더 나은 것 같다.
좋은 통번역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다. 열심히 해야지. 일단 잠부터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