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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Jul 28. 2024

매미가 사랑할 때

대서. 태양 황경 120도

올해는 장마라고 안 하고 우기라더라. 우기가 7월 내내 녹아내리다 끝나고 며칠 전엔 아침에 갑자기 매미 소리가 시작됐다. (중복이었다) 요즘은 하루종일 하늘에 구름이 터질 듯이 꽉 차 있다. 소나기가 몇 번이고 뿌려 온도를 낮추긴 하는데 숨 쉬기가 한증막 같다.


밤. 내가 청각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한여름밤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더위를 피해 밤에 찾은 소사벌레포츠타운 트랙 반바퀴에는 미루나무 벽이 있다. 나는 미루나무를 보면 중학교 1학년 막 들어가서 머리가 덥숙하게 올라온 까까머리 남자아이들이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이란 규격이란 것을 몸에 씌우고 깎아내는 방식으로 처음으로 규격이란 것을 당한 나이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자애들은 여중, 남자애들은 남중으로 가게 되어 얼마 만에 남자애들을 만났을 때 여전히 아직 앳된 아이들이 이젠 ‘덜 자란’ 아이들로 보여서 생경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는 그 애들이 맞나. 싶던.


까까머리 같은 미루나무 꼭대기가 파르르 사르르 떤다. 꿈결 같은 손짓으로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 하면 공원을 꽉 채운 젖은 수건 같은 물기를 타고 매미가 아르르르 울기 시작한다. 이쪽 나무, 저쪽 나무, 쩌쪽 나무, 울음이 옮아간다. 7월 내내 비가 와서 매미는 날개 마를 틈이 없었다. 7년을 어린 곤충으로 살고 하룻밤새에 어른으로 변신해서는 성년의 달콤함을 단 한 달 누리고 가을은 매미의 숨을 거둔다. 바닥이 바싹 마르는 늦여름이 되면 장마에 벗었던 어린 때의 허물처럼 두 번째 육신을 이번엔 통째로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두 번째 육신역시 아스팔트 위에,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죽은 듯이 내려앉아있다가 찻바퀴 바람이 낮게 잉 일면 바스락거리며 데구루루 굴러다닐 것이다.


단 한 달. 올해처럼 이제 대한민국에 우기가 생긴다면 더 줄겠지. 성년의 때를 단 한 달 뽐내고 가는 매미의 생이 황홀하려나 조급하려나. 매미는 누굴 향해 메이팅콜을 울리나. 대기에 열감만 올라도 매미는 교미의 사이렌을 켠다. 이른 아침 해가 뜰 때 탁 켜서 해 질 녘까지 울리다가, 밤에도 열이 식지 않는 도시에서는 잠 못 드는 젊은이들처럼 불 켜진 창문 방충망에서, 찻길 옆 가로수에서, 레포츠타운 풀 숲에서. 단 둘이서 사랑을 속삭일 시간 따윈 우리네에는 오지 않을 시절이라는 듯 선거유세차처럼 쩌렁쩌렁하게 마을을 울린다.


근데 그게 교미의 사이렌이 아닐 수도 있을까? 교미는 순간인데 한 달 내내 우는 것은 에너지 효율 ‘매우 나쁨’이다. 하지만 학자들이 이름 붙인 대로 저것이 사랑의 찬가라면 매미는 누구를 사랑하는 걸까. (교미는 사랑과 상관이 없을지도)


매미는 어쩌면 미루나무를 사랑하는 거 아닐까.

사람들은 사는 데에 짝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나만 해도 어떤가. 나는 사람을 사랑하기 겁이 나서 나는 나의 시간만을 사랑한다. 내가 죽거나 살거나 밉거나 내가 싫증이 나더라도 나를 배반하지 않고 내 곁에 있을 나의 시간만을.

같이 트랙을 뛴 사람이 요즘 젊은이들은 왜 결혼하지 않냐고 해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이어 이어 말했다. 짝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을 생각해 보면 매미가 미루나무를 사랑한다는 가설도 일리가 있다. 이런 가혹한 계절에도 바람이 불어올 때, 가장 먼저 바람을 감지하는 홀가분한 꼭대기가 바람 들어갑니다~ 손짓해 주면 매미는 이때다 하고 날개를 털기 시작한다. 힘에 겨운 바람이 미루나무의 억세고 성긴 가지 사이사이 안쪽을 파고 밀려들어오면 매미는 얇은 날개로 그 미약한 바람을 가두어 작은 몸을 구석구석 말리고 피와 근육의 진동으로 다시 열감을 낸다. 열감이 느껴지면 매미의 DNA가 다시 사랑의 노래를 켠다. ‘짝? 없어도 돼. 어른의 시간? 반으로 줄어도 돼.’가 아니라. 그저 이 여름을 사랑한다고. 태어날 때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는 이 생에서의 계절을. 그 계절은 내 육신을 떨게 해 미루나무를 떨리게 하고, 미루나무는 물기 젖은 이파리로 빛을 반사시켜 눈길을 끌어와 ‘매미가 운답니다’ 하고 사랑에 귀 닫은 어떤 사람에게 불러주는 노래. 육신을 빠져나온 노래가 되어 여름밤을 무한히 무한히 이어간다.



7/27


(대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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