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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10. 2024

<사랑은 낙엽을 타고> 세상 망하고 삶은 초라해도 사랑

영화 평론가들이 뽑은 2023 10대 영화. 19명 투표 합산에서 1등한 영화다. 알고보니..


마트에서 일하는 여자와 막노동하는 남자. 2024년 달력이 보이는 헬싱키에서 멋진 건 하늘과 구름 뿐, 이들의 공간은 좋게 말해 소박하고, 볼품없다. 해고 등 온갖 고단한 일상은 기본. 와중에 불금 가라오케에서 부킹 마냥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 잃어버려 엇갈리고.. 우연과 의지가 겹쳐 두 남녀는 마침내 데이트란 걸 시도하는데..


핀란드 가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낙엽을타고. 화면은 자주 누추하고, 배경 음악은 생뚱맞거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속보 등 암울하며 예쁘고 로맨틱한 장면 하나 없는데, 남녀는 사랑을 시작한다. 그저 약간의 호감이었지만 어느새 조금이라도 잘보이고 싶고, 걱정도 해주고..


감정은 격하지 않고, 무뚝뚝한 얼굴의 건조한 대사도 살갑잖고, 내도록 묵묵히 일하는 일터의 모습을 몹시 평범한 앵글로 잡는 와중에.. (이래서 졸았다고 변명을..) 인간은 사랑을 한다. 날마다 전쟁에서 몇 명이 죽었다는 속보에 무감각해지고, 종일 술 몇 모금 외에 낙도 없지만 그래도 사랑 빼면 아무 것도 없지. 버석거리는 남녀의 일상에서 관객의 웃음 포인트가 이어지는 것도 결국 사랑. 사랑.


아니 왜 저래? 아니아니 왜? 불친절하게 냉막해서, 집으로 가는길 K선배 해설 듣지 못했으면 혼자 지하실 파면서 생각하거나 파묻었을 영화. 근데 하룻밤 지나고도 여운이 있다.

온통 실장님 본부장님 사장님만 나오는 신데랠라풍 드라마에 익숙하다는 것은 설정 뿐 아니라 눈도 거기에 맞춰져 있었구나. 화려한 모델하우스나 그림 같은 풍경만 보다가.. 어쩐지 무척 잘 사는 북유럽 헬싱키 환상을 깨버리고 저런 잿빛 앵글만 보니 낯설었다. 저렇게 골라 찍고, 저렴하게 찍는 것도 능력이다. 중요한 장면에서 그저 소리만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솜씨(?)에 놀랐다. 길바닥 구르는 낙엽 같은 인생에도 역시 사랑 뿐이라니까.


덕분에 다시 생각해본 드라마는 #사랑한다고말해줘. 함께 1편을 보던 남편은 “정우성 얼굴만 보는 드라마”라며 떨어져 나갔지만 바로 그게 장점인 드라마. 정우성은 멜로를 덜 찍으며 세월을 소모했는걸ㅎ 무튼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남자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좌절 뿐인 여자의 사랑 얘기인데.. 다른걸 다 떠나서 때깔이 무척 곱다. 제주도와 한양도성 성곽길에서 예쁜 구도는 다 모았다. 거의 모든 장면이 화보다. 소품이나 빛을 쓰는 것도 세심하다. 예쁜 판타지다. 3편까지 보고 주춤한 상태. 최애배우 정우성 화보 드라마인데..

마침 헬싱키의 비루한 풍경을 보고 나니.. 난 화보만으로는 만족 못하는 인간인가. 다른 언어(수화)를 배우면서 다가가는 마음, 다르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의 실체 등 이야기도 괜찮은데 하여간에.. 예쁜건 충분하고, 현실은 현실이고... #마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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