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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09. 2024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사람을 구하는건


슬로우뉴스로 발행한 글. 본진 업뎃 해둔다.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적 살던 은마아파트는 31평, 34평 다들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중산층 동네였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분명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기자가 됐는데, 만나는 이는 대부분 사회의 강자, 권력자들이었다. 이제보니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친구조차 대체로 엘리트들이다. 계급이라는 단어는 낡은 느낌인데, 현실은 사다리가 무너진 폐허다. 나는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모른다.


사회적 약자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건 괜찮을까? 끼리끼리 어울리며 ‘관점의 사각지대’를 놓치는 건 아닐까? 질문을 오래 품어왔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책은 이처럼 무심하고 무능한 나를 대신해서 그 아이들을 만난 이의 기록이다.


25년 경력의 교사이자 연구자가 빈곤가정의 아이들을 10년 계속 만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당동 철거민 가족을 25년 간 추적해 우리 사회의 ‘레 미제라블’을 그린 <사당동 더하기 25> 이후 오랜만이다. 귀하고 고마운 정리인데, 심지어 술술 읽힌다. 이론보다 생생한 목소리에 무게중심을 둔 덕분이다. 이 주제에 관심들이 있냐고? 최근 오픈한 북살롱 오티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다. 도서관에서는 줄서서 빌려가는 책이란다. 우리 관심이 아직 살아있었거나, 책이 워낙 좋거나.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 했던가. 가난도 들여다보면 이해가 달라진다. 먼저 당신은 성실한 노력형 능력자이고,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착각부터 버리자. 완벽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가난은 단순히 소득과 자산이 부족한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삶에 대한 태도, 반듯한 마음가짐, 자신감과 자존감,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무형의 자산 부족도 심각하다. 빈곤은 대물림되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역량을 박탈한다. 정신적 학대에 사회적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모든 걸 개인 책임으로 떠넘겨도 될까?


가난하더라도 오손도손?


가난해도 오손도손 화목한 가정을 그려내던 드라마는 판타지다. 실제 가난은 가족을 망가뜨리곤 한다. ‘삶의 자양분이 되는 공간’이 아니라, 굴레이자 짐이 되는 일이 흔하다. 당장 돈이 급하고 심리적으로 다급한 사람들은 합리적 판단을 놓치고 별별 일을 다 겪는데, 종종 서로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벌어지지만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것은 시야가 좁아진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난한 가정의 부모는 사회적 지지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타의 다른 수단이 없는 경우가 많다. 수정은 어머니와 연관된 크고 작은 일들 때문에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요금이 연체되고, 신용불량의 위험에 처하거나 빚쟁이들이 따라오는 일을 겪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의 사례. 그의 일상에는 여유도, 쾌락도 없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죽어라 노력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성이 착취당하는 구조다. 가난할수록 뿔뿔이 흩어지는 비정상가족일 가능성이 높은데, ‘정상가족’에 대한 결핍이 ‘좋은 아빠’ 강박이 됐다. 정상가족이 아니라서 배척당하고 고립당한 사회적 경험 탓이다. 그 소외감과 열패감이 동력이 되어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솔직히 애잔하다.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필요하면, 꿈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시간빈곤, 문화빈곤, 주거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가출과 동거를 반복하는 등 잘못된 선택에 대한 죄책감, 자신에 대한 환멸도 흔하게 나타난다. 새 삶을 시작했어도 아픈 과거 탓에 스스로 가식적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사회적 규범을 넘나들었던 과거와 화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제는 온전히 그의 책임일까? 복지 제도가 실패하고, 학력 위주의 교육 제도가 삐걱거리고 지역사회 공동체가 붕괴하면 청소년들은 쉽게 착취당한다. 성매매, 도박, 마약 산업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들이 청소년 범죄의 마당이 된다. 부정적 시선을 견뎌내기 위해 비슷한 또래끼리 뭉쳐서 더 일탈하게 된다. 믿어주는 이는 없고, 낙인 찍혔다는 불안감은 커진다.


씩씩하게 이 모든 터널을 빠져나와도 곳곳에 장벽이 있다. 여전히 마음이 힘들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소희 사례. “내면의 힘이 부족해서 쉽게 좌절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서있기 괴로운 상태”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력 결손이나 경제적 궁핍보다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았던 혜주는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사람들을 선별할 줄 아는 힘이 부족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자신을 착취하는 관계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기회를 만들어내는 건


저자가 만난 아이들은 솔직히 빈곤가정의 에이스들 같다. 복지관 소개로 만나다보니, 그중 잘 자란 아이들을 만나게 된 듯 싶다. 교육과 돌봄의 공백 속에 복지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은 아이들이다. ‘목표 없이 부유하던 삶에서 목적을 갖고 몰입하는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각 개인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섣부르지 않게, 차분하게 희망의 증거를 보여준다. 소희도 그렇다.


”소희는 역량이 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대학 입학과 자격증의 관문을 뚫었는가? 소희에게는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도움을 준 친구가 있었고, 대학 입학을 물심양면 도와준 사회복지사와 복지관도 있었다. 즉, 자신을 믿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 관계망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힘을 내고 노력을 하는 데는 혼자만의 결심과 성취 욕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문제도 결국 ‘다정한 연대', 손을 내미는 단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드는구나. 저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지렛대는 인간관계”라며 “사람들의 기대에 호응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사회의 기본을 지켜주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다”고 썼다. 그 누군가는 친구일 수도 있고, 어떤 어른일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방법이 없을까 모색하게 된다. (이런게 필요하지 않냐고 얘기하는데 젊은 내 친구가 곧바로 ‘러빙핸즈’를 소개해줬다.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수년간 멘토링을 지속하는 프로그램이 있더라)


여기에 더해 저자가 발견한 것은 ‘성찰하는 힘’이다.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사회적으로 독립적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이 관건이다. 그러나 저자가 안타까워했듯, 우리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외적 지식(학력)이나 외형적 모습(재산, 직장 등)에만 매달릴 뿐이다.


가난한 아이들, 아니 모든 아이들이 자라는데 다양한 경험과 교육적 자극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학교나 공공도서관 같은 공공영역의 할 일도 많다.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더 다양해지고 접근성이 높아지고 질적으로 향상되기를 저자는 희망했다. 구김살 없이, 열등감과 위축감 없이 자라는데 당연히 도움이 된다. 가난을 자신의 죄로 여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출발점이다.


부유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이 책의 부수적 효과다. 그다지 온화한 풍경은 떠오르지 않는다. ‘더글로리’의 인성 무너진 주인공들은 드라마 얘기겠지. 다만 그들이 약자에게 공감하는 방법을 배운적 없다는데 한 표. 그들이 좋은 스펙을 쌓아 울타리 안 일자리를 얻고 자산가가 되면 해피엔딩일까? 불평등한 세상에서 끼리끼리 행복할 수 있을까? 분노와 좌절감이 넘실거리는 사회는 안전할까?


독서클럽의 토론이 달아올랐던 책이다. 독서 후 남는 질문들은 다른 사회적 현안들과 다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저마다 필요한 이에게 손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은데, 우리 사회는 쪼개져서 서로 만나기가 어렵다. 일단 알면 보인다고, 이 책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공감, 인식>   

긍정적 에너지로 생각의 방향을 바꾼 사례들도 있고, 대체로 최악은 벗어난 사례인듯요. 책을 읽고 희망을 갖게 됐나요? 혹은 더 절망하게 됐나요? 혹 마음이 불편했다면 어떤 지점에서요?

전혀 모르는 이야기여요? 짐짓 모른척? 당연했는데 문득 새롭거나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 지점은 무엇인가요?

가난이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문제라는 시각, 어떻게 봐요?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보편적인 것 같아요?

가족은 ‘삶의 자양분이 되는 공간’인 동시에 착취의 굴레가 되고, 정상가족 압박이 폭력이 됩니다. 개인이 풀 수 있는 문제일까요?

빈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세요? 복지에 대한 공감은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

우리의 고민, 행동>   

폭력으로부터, 정서적 결핍으로부터, 빈곤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국가가 나서야 하나요? 세금 더 내요? 학교가 달라지면 되요? 사회적 관계의 빈곤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기댈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면 다를까요?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면 어디서부터 출발하고 싶어요? 마음은 굴뚝 같은데 당장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실존이 불안한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좋은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요? 그런데 우리가 어른으로 잘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은 뭘까요? 당신은 어디서 도움을 얻었어요? 혼자 잘 컸나요?

부유한 아이들은 괜찮은 것 같아요? 불평등한 사회의 고통이 전가될까요?

성찰하는 힘은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해요? 일탈하는 아이들에 대한 관용과 엄벌주의 균형점도 함께 생각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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