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세 친구의 뒤늦은 수학여행 이야기인데, 저들은 고작 20대 중반. 망한 아이돌이었다. 영화 #힘을_낼_시간, 빤한 예상을 뛰어넘는 배반의 연속이었다. 기대보다 좋았다.
영화 시작부터 투자사 이름이 자막에 뜨는 대신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제작이라니. 인권위는 알고보면 21세기 내내 인권 영화 제작에 애써왔다.(21년 전 첫 인권 옴니버스 영화에는 박찬욱 감독님도!) 오랜 경륜 덕분인지, 국가기관 지원 영화인데(!), 심지어 인권영화인데(!) 고퀄에 재미있다.
나도 몰랐던 인권영화에 대한 편견 미안하다. 인권영화에서 예상하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선남선녀가 주인공이다. 아이돌은 아무나 하나. 수민(최성은)과 사랑(하서윤)은 걸그룹 출신으로 반짝 인기를 얻다가 잊혀진 이들. 보이그룹 멤버 태희(현우석)는 군대에서 그룹 해체 소식을 뉴스로 봤다. 여행 시작부터 뭔가 터덜터덜 지친 이들이긴 한데, 대충 입어도 멋진 건 어쩔..
10대에 전쟁 같은 경쟁을 치른 이들은 20대 중반에 이미 은퇴자. 일하느라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수학여행으로 제주를 찾았다. 그러나 알고보면 사연 많은 여행이었고, 뭔가 나사 빠진 친구 덕에 꼬이고 또 꼬인다. 셋이 가진 돈은 98만원이 전부라니, 아이돌로 일하면서 제대로 정산도 못받았다고? 화려하게 빛나는 별들만 보지만, 그림자가 더 암담한 동네다. 노예같은 계약에 인생이 묶이고, 더 뜨지 못한 잘못은 모두 자신의 탓인양 자책한다. 멋진 무대 뒤에서는 비정한 가스라이팅 뿐인가. 어린 친구들이 배운 건 뛰면서도 음정이 흔들리지 않는 실력과 경쾌한 몸짓 뿐, 보통 사람의 생활력과 거리가 멀다.
한 곡 히트했더니 바지가 점점 짧아져서, 생리도 할 수 없었다고. 이 문장이 이상하더니만, 말그대로 생리 금지. 그게 가능해? 먹으면 토하는 것도 일이다보니 몸이 그렇게 적응해버린다. 게다가 당사자들도 부끄러운 섹시 컨셉.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글로벌 스타가 될 수도 있지 않나, 미친듯이 서로를, 스스로를 몰아붙인 결과는 망한 것에 더해 망가진 삶이다.
너무 어릴 때 별별 일을 겪다보니 사람을 못 믿는 이들. 그러니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상하다. 갑자기 자신들을 알아보는 천진난만 팬부터, 이상하게 바라보는 귤밭 아저씨.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사람을 못믿는 건 저들 뿐 아니라 관객도 그랬구나. 이럴수가.
불안한 인간은 의외로 단단하고, 단단한 줄 알았던 인간은 의외로 불안하다. 빙구처럼 웃는 인간은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누구나 반전이 있는 걸까.
GV에서 남궁선 감독은 낮에는 아이돌을 취재하고 밤에는 혼자 울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고통에 깊이 몰입했던 그는 그 내용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지는 않았다. 별 것 아닌듯, 다 지나간 듯, 아무렇지 않은듯 언뜻언뜻 드러낸다. 설마 하면서 짐작하고 당황하게 만든다. 우리는 K팝 시대에 환호하지만 판타지만 보지 말자. 가리워진 어둠이 깊다.
영화는 제목부터 분명히 했듯, 암울하진 않다. 그들도 우리도 다들 ’힘을 낼 시간‘. ”음정 박자 다 틀리는데 달콤하게 불러달라“는 감독 디렉션에 따른 태희의 노래 장면을 비롯해 세 친구를 따라가는 제주 로드무비다. 처연해도 예쁜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웃으면 우리도 웃는다. 저 친구들이 앞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남는다. 우리가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수 밖에. 힘을 내자. #힘낼시 #힘을_낼_시간 #마냐뷰 #국가인권위원회_기획제작인데_어지간한_상업영화보다_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