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무너졌다. 문제 하나가 안 풀렸을 뿐인데 더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시험보러 가기 싫어, 차라리 죽고 싶다고 엄마에게 울면서 고백했다. 학교란 그저 평가하는 곳. 인정받지 못하면 끝이라는 불안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멀쩡히 잘 해왔지만 불안에 삼켜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다큐멘타리 영화 <괜찮아 엘리스>는 해맑은 그녀의 자기 소개로 시작했다. 고통의 흔적보다 사랑받으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 특유의 건강함이 두드러졌다. 영화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대신 잠시 다른 길을 택한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행복지수 높은 덴마크를 탐구하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세운 꿈틀리 인생학교 친구들이다. 본격 진학 전 인생 진로를 탐색하며 1년간 잠시 쉬어가는 덴마크 에프터스콜레가 모델이다.
그저 웃고 떠들기만 해도 어여쁜 아이들에게 흐뭇해지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즐거움. 무엇을 해도 눈부신 저 아이들이 공부와 경쟁에 치이고, 외모 압박으로 섭식장애에 빠진 경험을 털어놓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는 배움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공간이다. 우리 세대는 겪어보지 못한 강도로 학업 경쟁을 강요하는게 학교다. 대안학교인 꿈틀리인생학교는 그 아이들이 스스로 기숙사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몸을 쓰면서 다른 길을 알아보는 기회다. 주인공은 꿈틀리 8기생인데, 꿈틀리를 졸업한 선배들도 저마다 다시 길을 찾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도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찾는 여정 자체에 집중한다.
우리 교육이 망가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 정부의 교육개혁은 그저 수능 수시와 정시 비중을 어찌하겠노라 하는 수준에 머문다. 우리 아이들은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 21세기 시민에게 요구되는 민주주의 교육, 젠더교육, 생태교육,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맺고 살아갈 수 있는 인권 교육을 계속 외면해도 괜찮을까? 성적순으로 의사가 되는 아이들만 승자인 게임의 규칙은 괜찮은가? 조기유학으로 입시지옥에서 탈출시키는 부모를 능력자로 보는 건 옳은가?
둘째는 제대 후 학교를 벗어나려고 했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겠노라, 전공과 상관 없이 이런저런 길을 모색하며 2년 가까이 세월을 보냈다. 엄마로서 속 터지는 시간이었다. 꿈틀리 처럼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혹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에 갭이어를 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탐색하는 것은 부러워했던 주제에 정작 아이의 방황을 함께 견디는게 쉽지 않았다. 질풍노도 시행착오의 시간은 언제든 온다. 그걸 꿈틀리 처럼 체계적으로 받아줄 품이 더 있으면 좋겠지.
마침 지난 주말 북클럽에서 읽은 책이 조너선 하이트이 <불안 세대>다. 아이들이 큰일이다. 그들도 불안하고, 부모도 불안하다. 이건 차분히 담에 소개하겠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어른으로서, 일단 <괜찮아, 엘리스>부터 보자.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려면, 다른 길을 택했던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다큐 영화로 만들어주신 양지혜 감독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