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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점일기

<서점 일기>인데 40인 뷔페도 차려보네

by 마냐 정혜승

"식당하시면 좋겠어요. 너무 맛있어요"... 라는 말까지 들어보다니. 오늘 40명 뷔페 혼자 준비한거 실화냐..


노르웨이와 일본 중국에서 온 학생들과 세미나 후 점심 먹는 행사를 J교수님이 예약하셨다. 뷔페 음식 몇번 주문해봤는데 내 입맛에 쏘쏘. 요즘 외국인들은 김밥, 잡채, 불고기면 통한다는 말을 믿고 직접 해보겠노라 했다. 그런데 10여명이 비건이란다. 흠..


오랜만에 #마냐밥상 차리는 마음으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리라 신난 바람에, 어제 오후 내내 준비했다.


목이버섯 처음 써보는데 물에 불렸더니 미친듯이 늘어나서 좀 당황..양파 당근 파프리카 시금치 더해서 잡채 완성. 원래 손이 큰데 진짜 많이 했다...

불고기는 양념된거 사서 버섯과 양파를 가득 추가했는데 2kg 웍에 넣었더니 넘치더라는.. 두차례에 걸쳐 3kg를 미리 조리했고.


연근과 새우, 브로콜리를 데치고 파프리카, 감을 더해 준비. 차게 두었다가 먹기 직전 참깨드레싱, 마요네즈로 쓱쓱 버무리면 끝. 엄마가 하던 잣소스 떠올랐지만 40인분 준비하면서 그렇게까지 할 여력은 없..


비건의 단골 재료인 두부는 뭘할까 고민하다가 물기 쫙 빼고 간장쯔유참기름으로 간하고, 액젓 매실청으로 무친 바라깻잎 나물을 쫑쫑 썰어 섞었다.

전날 고춧가루 다 씻어서 가늘게 찢어둔 묵은지를 들기름에 뭉근하게 볶았고,

소뿔농장에서 깨끗하게 말려준 건호박을 불려 액젓에 볶았다. 고사리도 했는데 불리기만 하고 삶는걸 깜빡해 조금 뻣뻣ㅠ 얘는 뺏다.


오티움 대표메뉴인 구운채소 들깨 샐러드는 대략 여덟 접시 분량을 준비한듯.

까눌레는 당일이 가장 맛있기 때문에 오늘 새벽 6시에 일어나 두차례 구웠고,

9시 행사 시작 후 상추 오이 깻잎을 씻어 막판에 간장식초설탕참기름에 무쳐서 냈다. 이게 가장 먼저 떨어짐.


체격 좋은 노르웨이 친구들 보다가 당초 20인분 주문하려던 김밥 30인분 주문.. 좀 남은건 다 들려서 보냄...

불고기와 바베큐삼겹살을 제외하면 모두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 김밥도 5종 주문하면서 샐러드김밥을 각별히 챙겼다.

오늘 특별근무해준 ㅈㅎ 덕분에 별탈 없이 마쳤다.. 어제 내내 부엌에서 서있었고, 오늘 9시부터 3시까지 서있었더니..와아아.. 하던 중에 맛있다는 외국인 학생들 반응에 피로 절반은 풀었고, 오후에 친구들과 호젓하게 차 마시면서 나머지 피로를 다 풀었다ㅎㅎ 이제 뻗으련다. 애썼다고 셀프 칭찬.



개피곤한 오후였는데 순식간에 평안하고 충만한 시간이다. 차의 마법, 사람의 조화다.


아름답지만 누에 장식이 똑 떨어진 옛 자사호의 쥔장과 도편을 이어붙이는 킨츠기 전문가를 연결해드렸더니.. 오늘 말끔해진 아이로 오티움에서 차를 마시게 됐다. 두분 다 차에 진심이라 귀한 차는 물론 다구까지 다 챙겨오심.

심.지.어 선물도 주셨다. 무려 12세기 혹은 14세기 고려청자 대접이라니. 킨츠기로 이빠진 곳을 금으로 떼운 아이. 군고구마 향을 남기는 전홍도 받았다. 거간꾼이 횡재한 기분. 살롱 마담 심봤다.

차를 마시는 리츄얼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은, 내게 시간을 선물하기 때문인듯. 멀티태스킹하며 바쁘다 바빠 하지 않고, 나에게,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 행복하다. (와중에 이걸 포스팅하며 잠깐 딴짓중. 그래서 초스피드로 포스팅 끝내야지)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 다정하고 선량한 이들의 대화. 비록 두분 나누는 차 얘기는 외국어 마냥 알아듣기 어렵지만 상관 없다.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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