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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며들다 Apr 04. 2023

도슨트(Docent)

그림과 화가의 인생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

그림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작품을 설명할 때면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작가와 관객의 생각을 이어주는 직업 ‘도슨트’


도슨팅 하기 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삶을 듣는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렸는지. 이 작품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미팅을 통해 작가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갖는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림을 통하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한다. 

그림의 배경색, 선의 굵기나 여백을 보면서 그림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선생님은 좋아하시는 일 하셔서 행복하시죠?”라며 관람객이 종종 묻곤 한다. 나는 그때마다 “네, 너무 행복합니다. 관람객들이 오셔서 작품을 보고는 이게 뭐지? 하고 의문을 가지시다가 제 이야기를 듣고 아~하고 이해하시고, 재미있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저에게 더 기쁨을 줍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다음 이어지는 질문이 “전공자세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수줍게 “아니요”라고 이야기하면 질문하신 분이 놀라시면서 '설명을 너무 쉽고 재미있게 해 주셔서 전공자인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건 아마 내가 비전공자여서 일반인의 단어로 설명하기 때문인가 봐요'하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떻게 도슨트를 하시게 된 거예요?”      


나는 원래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관련된 일을 했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과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에 취직이 잘되는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일을 했다. 내가 원하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왜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지?’ 하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린 듯 허함이 몰려왔다.   

  

나는 항상 샤워를 하면서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우는 소리를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날도 나는 샤워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내 울음소리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날은 밖에서 술을 한잔했다. 독한 위스키 3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나온 후 아직 날이 밝았다. 멀리서 보니 검은색에 빨간색이 크게 칠해진 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홀리듯 그곳을 갔다. 작은 미술관이었다. 표를 사고 들어가서 그림을 구경하다 어느 작은 방에 들어갔다. 아주 어두운 방에 조명하나 가 큰 그림을 비추고 있었고 그 앞에는 빨간 벨벳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앉았고 그 그림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아주 우습게도 당연한 듯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누군가에게 내 치부를 들킨 듯 놀라며 휴지를 받아 들고 나와서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 보니 사람들 몇 명이 모여있었다. 뭔가 싶어서 가니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그림 설명을 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내가 울었던 작품의 작가는 마크 로스코였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 작가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꼭 나같이 느껴졌다. 그분의 말에 신기하게 위로가 되었다. 

설명을 마치고 다른 관람객과 인사를 한 뒤,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그분에게 가서 나는 물어보았다. 

"큐레이터세요?" 

"아니요. 도슨트예요"

‘도슨트?’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제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렇게 내 기억에서는 잊혀지고 있었다.              

     

얼마 후 세상에 배신당한 기분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힘든 회사 생활 때문이었는지 두 달 동안이나 몸살이 나서 두문불출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보던 중 평생학습관에서 미술사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 무료잖아. 듣고 싶었는데 잘됐다’

알고 보니 강사님이 미술대 대학원 교수님이셨다.

수업이 세계 역사와 미술을 오가고 특히 선생님이 부산 사투리를 섞어가며 수업을 해주셔서 너무 재미있었다. 어쩜 저렇게 찰떡같이 비유를 잘하시는지. 

    

그 뒤 생긴 ‘도슨트 양성과정’은 같은 강사님이라서 생각 없이 신청하고 재미있게 수업을 듣고 과정도 수료하였다. 그해 현대미술관이 집 가까운 곳에 생겼다. 도슨트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말에 수업을 같이 들었던 선생님들과 도전했다.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이 진행되었다.     


"왜 도슨트를 지원하시게 되었습니까?"라는 학예실장님의 질문에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연히 갔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한참을 울고 난 후 어떤 여성분이 하시는 작품 설명을 듣는 순간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는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관람객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하고 순식간에 대답했다. 속으로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그렇게 도슨트가 되었다.


내가 그림에서 받았던 위로를 이제는 관람객에게 해주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생각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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