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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시네마는 영화관이 아니야?

[양평 사람 최승선 034] 광고 없는 영화관이면 오히려 좋아 아니야?

by 최승선

모든 도시에 영화관이 있는 게 모든 학교에 놀이터가 있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일이란 걸 몰랐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셋 중 하나는 당연히 도시에 있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 몰랐다. 그래서 양평에 영화관이 없다는 이유로 놀리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반응을 해주지 못했다.


양평에 맥도날드가 없냐는 말에는 "롯데리아는 있어! 버거킹도 있고!!"할 수 있고, 서브웨이가 없냐는 말에도 "서울 가서 먹으면 돼!!" 할 수 있지만 영화관이 없냐는 말에는 벙쪄버리고 만다. "영화관 있는데...?" 그러면 더욱 깔깔 웃으며 "그런 거 말고! 멀티플렉스 없잖아!" 하는 사람에게 '양평시네마는 영화관이 아니야...?'하면서.


나의 첫 양평시네마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수능이 끝났는데도 학교에 온 기특한 고3들에게 학교에서 영화관을 보내줬다. 친구 2였다. 강한 부산 억양의 말씨는 선명하지 않은 스피커로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자막이 있길 바랐다. 자막이 있었더라도 볼 수 없었겠지만.


그때 양평시네마는 광고도 없고, 좌석 번호도 없었으며, 단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차 없는 극장이라니. 중학교 때 강당도, 고등학교 때 소극장도, 하다못해 음악실에도 단차가 있었는데 영화관에 단차가 없다니! 작지 않은 키였으나 앞 친구의 머리통이 스크린의 1/3을 가리고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보다 그 경험이 더 흥미로웠던 기억이 양평시네마에서의 첫 기억이다.


그리고 20살, 또 양평시네마를 찾았다. 조조 6천 원의 가격도,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도 모두 나의 흥미를 자아냈다. 광고가 없는 대신 탑 100 리스트만 흘러나오는 영화 시작 전 시간이 좋았다. 정시가 되면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불이 꺼지고(그전까지 환하다.), 몇 없는 관객들이 알아서 감상 모드를 만드는 게 좋았다.


그러던 양평시네마에 시스템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매라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소식! 아직 인터넷으론 불가했지만, 좌석을 미리 정할 수 있다는 소식! 그 소식은 좌석을 미리 정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명량'이었다. 압도적 흥행 1위의 그 영화가 한적하던 양평시네마까지도 매진시켰다. 지하 1층의 매표소부터 시작된 줄이 건물 밖으로 삐져나오게 만들었다.


영화관의 기본인 주차도 안 되는 영화관. 영화가 바뀔 때까지 상영 시간표가 고정된 영화관. 이제는 온라인 예매도 가능해진, 어엿한 영화관! 1년에 두어 번씩 양평시네마에 가는 날이면 돌비시네마를 가는 날보다 설렌다. 우리 동네에 있는 영화관이라니.


언젠가 이 영화관이 사라진다고 하면 어쩌나, 벌써 섭섭한 마음으로 빠르게 인수하는 상상까지 해본다. '그럼 독립영화도 걸어야지! 하지만 돈은 못 벌겠지? 아무래도 어렵겠다. 지금 사장님은 양평시네마를 왜 하실까? 마진이 없을 것 같은데.. 오래 버텨주시면 좋겠다.' 영화관 불이 꺼질 때까지 매번 하는 이 상상이 영영 쓸데없는 상상이면 좋겠다.


페이스북 시절에 남겨놓은 양평시네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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