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37]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요?
난생처음, 오직 케이크 때문에 춘천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퇴근 30분 전, 갑자기 폭설이 시작됐다. 아침에는 잠깐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이 정도의 눈발이면 잠깐이어도 문제였다. 그렇지만 청춘이니까(청춘도 위험하다) 킵 고잉 하기로 했다. 퇴근과 동시에 강을 건너 친구를 데리러 갔다. 분명 20분이면 갈 길이었다. 그러나 20분이 지났는데 난 여전히 강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비상등을 켜고 평균 시속 40km로 움직였다. 차마 달린다고 말할 수 없는 속도로 춘천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양평을 반도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우리는 깨달았다. 이 속도로는 밥 먹고 카페 가도 케이크를 못 먹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고속도로로 갈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위안 삼으며 계속 움직여봤지만 어느 순간부터 앞 창의 유리가 닦이지 않기 시작했다.
와이퍼로 열심히 앞 창을 닦아도 창 가운데의 물방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창쪽으로 난방을 켰는데, 그래서 눈이 건조하기까지 한데 창의 물방울도 어나? 또 열심히 와이퍼를 쓱싹. 그러자 보였다. 분명 까만 와이퍼였는데, 와이퍼 머리가 흰색이었다. 창에서 닦아낸 눈이 녹았고, 와이퍼에서 언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다들 한겨울에 얼어버린 와이퍼로 눈길을 헤쳐가며 운전을 하고 있던 건가?
지금의 내 차를 산 지 딱 1년이 지났다. 지난겨울엔 분명 이런 일이 없었다. 지금 차를 타기 전, 회사 차를 1년 동안 끌고 다니면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바뀐 것은 하나, 날씨였다. 마침 오늘은 최고 기온이 영하 5도, 최저 기온이 영하 19도인 날이었다. 서울보다 평균 기온이 약 3도가량 낮은 양평으로 이사 온 것이 문제 같았다. 눈이 오는 날 운전한 것도 처음은 아니었는데.
양평으로 이사 오고 맞이한 겨울은 더 부지런해야 했다. 눈이 오지 않은 날에도 성에는 가득했다. 눈이야 털면 끝이지만 성에는 긁어내야만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애매하게 쌓인 눈이 낮동안 녹았다가 밤이면 얼어버리기도 일쑤였다. 차창이 깨질까 걱정하며 얼음을 깨고 있자면 겨울을 지내고 있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제철의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길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동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차창을 닦아내고 있으면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어릴 때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차창을 긁어내던 아빠를 구경하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다들 이렇게 살았구나, 이렇게 사는구나. 힘든 길을 먼저 간 사람을 알고 있다는 건 그렇게 위로가 된다. 아빠가 해왔었지, 이제 내 차례구나- 좀 더 마음이 담담해진다.
내일은 아빠에게 운전 중에 와이퍼가 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