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
문자(한자)와는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언해본 내용)
훈민정음의 창시는 한국어가 한자로 쓰기에는 맞지 않아 익히고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읽혀 제 뜻을 펼치기를 희망하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으로부터 비롯했다는 것이 훈민정음 언해본의 첫 문단으로 남겨져 있다. 세종 10년 김 화라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존속살인 사건을 계기로, 세종이 백성들의 효행사상을 높이기 위해 '효행록'에 이어서 '삼강행실도'를 펴냈으나 한자로 쓰인 두 책을 백성들이 이해하고 실행할 수 없었다. 이를 가엾이 여긴 세종대왕은 배우기 쉽고 한국어와 맞는 훈민정음을 만들어 선비와 양반에 한정되어 있던 배움의 주체를 신분이 낮은 일반 백성들까지 확대하여 세상을 학습하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고자 하였다.
비록 훈민정음이 한글조차 배우기 힘든 사람까지 고려한 것은 아닐지라도, 한 백성이라도 배움에 장애가 있지 않기를 바라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한 훈민정음의 탄생은 학습이 가능한 주체의 범위는 특정 집단으로 제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 방식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학습의 장애요소를 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닌 교육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결 가능한 어떤 것으로 보는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의 가치와 통한다. 보편적 학습설계란 이전글에서 얘기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학습에 적용한 개념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종, 능력, 또는 장애 등에 의해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아니하고 공평한 학습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한 학습 설계를 말한다.
보편적 학습설계(UDL) 지침
보편적 학습설계에도 세 가지 지침이 있다.
지침 1. Engagement: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왜(why)' 학습하는가에 관련한 지침으로 학습에 대한 목표의식과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학습자들의 학습 참여를 위한 다양한 도구와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 수업에서 단순히 주입식 강의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제공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수동적 청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수교육적 관점에서 지침 1은 장애로 인해 제한되었던 학습 참여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가치로 작용하는데, 예로 문학 시간에 그림 및 애니메이션과 함께 제공되는 작품은 시각적 인식에 강점이 있는 자폐성 장애 학생의 흥미를 유발하여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지침 2. Representation: 다양한 방식의 표상을 제공한다.
학습이 '무엇(what)'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지침으로, 풍부한 학습자원제공과 지식을 가진 학습자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텍스트, 오디오, 비주얼 자료 등 다양한 형식의 교재를 제공하여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음성해설' 또는 '화면 해설 자막'을 제공하는 것은 시각장애인 또는 청각장애인도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표상 제공의 예이다.
지침 3. Action and Expression: 다양한 방식의 행동과 표현수단을 제공한다.
학습을 '어떻게' 하는가에 관련한 지침으로, 전략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학습자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강점과 선호도에 따라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쓰기 어려워하는 학생에게 음성 녹음을 통한 응답을 허용하거나, 수학 문제를 해결할 때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개별화를 통한 보편성의 추구
보편적(universal)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보편적 학습설계는 모두의 공평한 학습권(equality)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말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통일된 교육 방법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되면 안 된다. 오히려 모두를 포용하기 위해서 각자의 개성에 맞는 개별화된 학습을 실현 가능하도록 하는 교육 방식과 가깝다. 우리는 모두 달라 같은 방식으로 학습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각자에 맞는 적합한 방식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교육의 개별화를 통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포인트는 보편적 학습'설계'라는 것이다. 설계는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미리 계획하는 것을 말한다. 학생들의 특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상황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교육 방법을 제공하면 일관성없는 교육을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할 뿐만 아니라 학생의 요구를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학습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 수 있다. 미리 잘 설계된 교수학습시스템 아래에서 유연하게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 보편적 학습설계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건축 전에 모든 장애 요소들을 고려하여 그것을 설계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면, 교육 분야에서 모두 다른 학생들의 요구와 능력을 고려하여 학습에 접근, 참여,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유연한 자료와 도구를 준비하고 수업을 설계하는 것이 학습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보편적 학습설계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읽기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