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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나 Sep 29. 2020

부부1년. 아주 사적인 날, 사적이지만은 않게

<소셜딜레마>가 던진 작은 공, 결혼기념일을 뒤바꾸다



기업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까?


첫 결혼기념일을 앞둔 어느 주말,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Netflix 오리지널 다큐 <소셜딜레마>를 봤다.


다큐의 골자는 SNS 기업이 유저의 삶에 얼마나 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리는 내용. 우리가 서비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 대신 프라이버시가 담긴 데이터를 의심 없이 갈취당하고 있으며 기업은 그를 통해 돈을 내는 클라이언트 사들의 광고를 보는 수용자로서 유저를 이용하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AI와 딥러닝은 그저 광고만을 위해 발전하고 있으며 광고의 기니피그로 살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천 시스템이 아니라 내가 탐색하고 발견하는 습관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내용도 의미가 있었지만, SF적인 페이크 다큐를 가미해 그 심각성을 피부에 더 와 닿게 했다. 살짝 무서울 정도로.


부부 모두 스타트업 업계에 있던 우리에겐 씁쓸한 이야기기도 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는 세상에 더 좋은, 나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창업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그저 큰 광고판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을까. 아니면 멈추지 못하는 걸까. 다큐에서 말하는 것처럼 광고로 먹고사는 시스템 자체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성장하면 할수록 더 깊어지는 주주자본주의의 앞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라는 무력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큐를 보고 나니 우려의 감상보다 길게 남는 것은 한 문장이었다.


‘세상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까(How do we make the world better?)’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



설거지를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잠들기 전에도 그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나를 계속 고민하게 했다.


이렇게 <소셜딜레마>가 전 세계 IT업계에 던진 작은 공은, 서울의 어느 부부가 앞둔 결혼기념일에 조그만 날갯짓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우리 둘은,

왜 부부가 되었을까?


6년 전 그때의 우리



6년 전 우리 부부가 아무것도 없이 서로 만났을 때, 나는 징구(남편)가 신기했다.


어디에서 데이트를 하든 큰 백팩에 벽돌 같은 노트북을 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건강보다 서버의 건강에 예민한, 기모 체크 셔츠를 입은 엔지니어.


어느 날 저녁, 그가 아무 생각 없는 취준생을 앞에 두고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를 할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창업이 더 가까운 방법이라고 생각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남편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때가 바로 그를 ‘쪼매 멋있는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했던 시발점이었다.


이후 남편을 포함한 친한 창업자 지인들의 이런 정신에 감화되어 대기업 초년생의 삶에서 뛰쳐나와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 =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움직임에 기여하는 것’이라 믿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렇게 아주 개인적인 세상 속에 살던 여대생 하나가 처음 알을 깼던 것 같다. 이후 줄곧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세상을 생각하는 사람과 긴 연애를 하면서 좀 더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 낯설지 않은 어른이 되어갔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 사람 곁에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나는 부족하지만 함께라면 그나마 세상에 조금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그런 파트너와 함께 해내는 삶의 성취들이 재밌을 것 같았다.


우리가 같이 만드는 소(小)우주는 얼마나 뿌듯한 모습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다는 사실....






우리 둘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까?



그렇게 만난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1년이다.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나는 휴직을 할 만큼 아팠고, 남편과 함께 견뎠다. 예기치 않게 백수 선언을 했고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뒤덮었다. 또 하나, 생활비 관리를 내가 맡게 됐다(?)


코로나 시대의 부부로 살아보니 우리네 부모님의 삶으로 배운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훨씬 더 밀착된 부부의 개념을 낳았고, 하루 세끼를 같이 차려 먹고 여가생활도 같은 공간에서 보내야 했기에 어느 때보다 피부를 찰싹 맞대고 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신기하게 과거 어느 해보다 행복했던 한 해였다.


정서적인 안정이 피부로 느껴졌다. 더 이상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됐고, 심각했던 조급증도 나았다. 어느새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와 고민을 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나밖에 몰랐던 내가 또 한 번 알을 깨는 느낌이었다. 더 행복해졌다.


행복과 안정의 순기능은 함께 더 잘 살고 싶어 진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나는 이만큼 괜찮아지고 행복해졌으니까 다른 누군가가 힘들지 않게, 슬프지 않게 하는데 도와줄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쉬운 실천은 주변 친구들에게 마음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걸로 깨끗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소셜딜레마>의 문장이 가슴을 울린 것이다. 우리의 사적인 기념일을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날로 쓸 수 없을까 고민했다. 겨우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의 몫보다는 조금 더 큰 원을 그리고 싶어서.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보탬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결국 첫 해를 기념해 두 가지를 실천해보기로 결정했다.






1. 둘이 함께 장기기증 등록하기

 

“오빠는 어떻게 죽고 싶어?

장례식은 어떻게 치르고 싶어?”


우리가 가장 대화를 많이 하는 자기 전 뒹굴 타임. 갑자기 죽음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니 남편의 침묵이 길어졌다.


아빠가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나고 나에게 죽음은 꽤 가까운 주제다. 본인의 계획 하에 죽음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고민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 장기기증은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최근 봤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영향도 조금은 있지.


“나는 오래 살고 싶진 않은데, 만약에 죽게 되면 장기기증을 다 하고 싶어. 근데 남은 배우자나 자식들이 보통 반대한대. 고인을 위한 예의가 아니라고. 오빠는 내가 해도 괜찮겠어?”


자신도 하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 그럼 결혼 1주년 기념으로 같이 하자!”


확인해보니 2012년 쫄보 대학생이었던 나는 우선 사후 각막 기증까지 체크를 해놓은 상태였고 이번 기회로 장기기증, 인체조직 기증까지 등록을 했다. 오빠도 함께.


생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최소한 쓸모 있는 삶으로 마무리할 준비는 되었다.










2. 교육기회의 평등이 닿지 않는 아이에게 기부하기


남편이 가장 해소하고 싶은 사회문제는 교육기회의 평등이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교육기회의 원조는 무엇보다 개인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퇴사를 하고 생활비를 내가 관리하게 되면서 매달 생활비 잔여금을 다음 달로 이월시킬 수도 있겠지만, 좋은 곳에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음 달에 더 넉넉한 예산을 가진 기쁨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절실한 곳에 쓰일 기쁨이 더 클 것 같았다


이번에는 생활비 관리한 지가 두 달밖에 안돼 두 달치 금액뿐이긴 했다. 제대로 된 기부처를 직접 찾기에는 민망할 정도라 온라인 기부를 알아봤고 해피빈을 통해 ‘성규’를 만났다.


KBS 동행으로 이야기를 자세히 접할 수 있었다. 고추밭을 하며 아들을 홀로 키우는 아빠를 도와 농사를 배우고, 공부도 열심히 해 효도하고 싶다는 착한 눈망울이 기억에 남았다. 올해는 고추농사를 잘해서 땅 대여비, 재료비를 갚고 꼭 아들 책상을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이번 해 작황이 그걸 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할 만큼 망해버렸다고.


둘 다 영상을 보며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한 해 경작의 성패와 성규의 공부 기회가 연동되어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렇게 큰돈도 아니라 부끄럽지만 성규가 맘 놓고 공부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혹시 성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좀 더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면 더 좋겠다.


프로그램 시청

해피빈 기부 페이지



결혼 2주년에는 열두 달을 꽉 채워 좀 더 많은 금액으로 필요한 곳에 드려야지.


처음이라 준비도 고민도 짧아, 항상 생각하고 있던 것들만 해보았는데 내년에는 더 나은 기부방안이나 다른 방법도 찾아보고 싶다.


혹시 이런 고민을 미리 해보신 분이 있다면 많이 알려주세요:)







이렇게 우리 다운 첫 결혼 1주년이 마무리됐다.


결혼식도, 삶도, 결혼기념일까지도 ‘우리 다움’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나의 파트너에게 가장 고맙다.





How do we make the world better?

부부에게도 조금은 가능한 얘기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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