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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나 May 31. 2020

수술 엔딩 크레딧

과분한 위로를 받은 개인적인 소식을 마무리하는 법

1.

영화가 끝났다. 에필로그신까지 마무리되면 눈 앞이 까맣게 뒤덮이는 시간이 온다. 우리는 그걸 엔딩 크레딧이라 부른다. 마치 명예의 전당처럼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든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곳이다. 리스트는 끝이 없다. 2시간의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땀이 들어가있는지. 만원 남짓한 티켓값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얼마 전 읽은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 <잘돼가 무엇이든>에서 엔딩 크레딧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엔딩 크레디트에 넣을 ‘고마운 사람들’을 정리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 특히나, 이번 작품에는 ‘고마운 사람들’과는 별도로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 항목을 따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감독이 직접 명단을 쓴다는 생각을 하니 항상 관객석에서만 보았던 화면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관객의 눈으로는 이름 몇 자겠지만 그 하얀 글자 아래에 담긴 감독의 무한한 헌사가 느껴졌던 것이다. 긴 시간 같이 달려와준 이에게 '당신이 있어 이 영화가 존재할 수 있었어'를 말하는 감사편지 같은거구나 생각했다.



3.

5월은 가정의 달이라던데, 올해 나에게는 수술과 위로, 끝없는 감사의 달이었다. 수술을 2주 정도 앞두고 개인적인 감상을 썼던 브런치 글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선 쓰지말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정말 너무 많은 이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 외에도 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댓글과 메세지, 전화를 통해 위로와 응원 메세지를 보내주었고, 몇몇 친구들은 대화를 하기도 전에 주소를 알려달라며 윽박지르기 바빴다. 건강에 도움되는 비타민, 홍삼정, 건강즙, 개인적인 선물, 꽃다발이 하루 걸러 집으로 배달됐다. 어떤 친구는 나를 먹이려 몸에 좋은 재료가 가득 담긴 한 상을 차려내기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오늘 어떤 친구가 나의 걱정을 해주었는지 매일같이 남편에게 공유를 받았다. 과분한 사랑이었다.


4.

그런데 글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브런치팀이 <수술을 하기로 했다>글을 공식 카카오톡 채널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꿈인줄만 알았다. 당일 조회수만해도 50000이 가깝게 나오고, 공유는 900을 넘어섰으며 구독자는 하루만에 300명이 증가했다. 카톡 플랫폼의 파급력은 대단했는데, 연락이 끊겼던 대학교 동창과 이 소식을 모르던 동료들이 글에 나오는 '다연'이 나인줄 몰랐다며 연락이 올 정도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에 넘치는 위로의 동심원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5.

특히 충격적일만큼 큰 위로가 됐던 건 일면식도 없는 분들의 진심어린 댓글이었다. 비슷한 수술을 했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분,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다 잘 될거라는 분. 글을 읽고 출근길에 눈물을 흘렸다는 분. 꼭 위로를 하고 싶다며 서툴지만 댓글을 처음 써본다는 분. 따뜻하고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 걱정없다는 분. 나중에 나올 아이가 오히려 천사라는 분.

나의 진짜 가족처럼, 친구처럼 걱정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치 내가 아는 세계를 넘어 온 세상이 내게 어깨를 빌려주는 느낌이랄까.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진가는 정말 이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특유의 온정적인 커뮤니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6.

이렇게 한 달간 많은 빚이 생겨버렸다. 남편이 얼마 전 포스팅한대로 가끔은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이런 사랑과 위로를 받아도 될만한 사람인지 가늠이 안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혹시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 글을 봤을 때 오히려 가볍게 다뤄진다고 여기지 않을지 걱정도 됐다. 가장 큰건 부채감이었다. 양 팔을 가득 벌려도 담기지 않을 것 같은 이 많은 위로에 내가 어떤 보답을 할 수 있을까.


7.

한번에 되갚을 순 없을거라 생각했다. 허나 글로 끼친 걱정이기에 보답도 글로 시작해보려한다. 감독이 고마움을 전하는 엔딩 크레딧처럼, 이 글은 힘들었던 수술기간동안 함께 걱정해준 분들에게 바치는 수술 엔딩 크레딧이다. 그들이 내게 내어준 어깨에 대한 커튼콜의 의미다.


회복기간 마지막 날, 꼭 전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있어 나는 건강한 두 발로 다시 설 수 있었다고.


8.

내일은 드디어 회사에 복귀합니다. 여태 미뤘던 업무, 약속과 미팅, 식사와 대화들이 기다려집니다.


큰 걱정 끼쳐드렸던 만큼, 정말 제가 더 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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