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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Feb 13. 2023

아빠의 무기

아들의 무기는 '귀여움', 아빠의 무기는?

지금 아들의 나이가 다섯 살이다. 

딱 그만할 때 엄마 손을 잡고 화실을 갔었다. 

떠오르는 머릿속 단편적인 이미지가 몇 개 있는 그 개인 화실.

선생님은 하얀 얼굴에 입이 작은 중년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키가 무척 커 보였다. 책상 위에 팔레트가 있었는데, 물감을 작은 똥처럼 짜놓았다. 웃기고 신기했다. 개인 화실 특유의 지저분함이 있었다. 화판도, 책상도, 바닥에도 수채화 물감 자국이 가득한 그곳에서 처음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미대에 입학했고, 내 안에는 개인 작업을 해야 한다는 욕구가 용솟음쳤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게으름이라고 하기엔 조금 억울하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젊음을 무기로 하루에 4시간만 잠자며 일하고, 과제를 했다. 덕분에 학비도, 생활비도 모두 해결했지만, 졸업은 늦어졌고, 그놈의 '개인 작업'에 대한 욕구는 더 커져만 갔다.


종합광고대행사에 입사했다. 전공과 무관했지만, 이전에 하던 일도 전공과 달랐고, 일종의 스카웃이었기 때문에 입사하게 됐다. 광고업이라는 것은 미래의 수명을 먹고 자라는 업계였다. 그때는 '개인 작업'을 꿈꾸지 못했다. 그때는 '생존'이 꿈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겼다. 처음으로 막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 산다는 것이 남에 피해를 끼치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한 습관들과 절제하지 않고 일하던 삶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왔다.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 당장 오늘 내가 죽으면, 그럼 내 아들은 어쩌지? 아들은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아들은 아빠 없는 자식이 되어 방황하지 않을까? 


그제서야 개인 작업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 포기했던 개인 작업에 대한 욕구가 아들이 탄생과 함께 태어나게 되었다. 30년을 넘게 잉태되었던 개인 작업은 내 아들, 딸에게 '아빠는 이런 사람이야, 아빠는 너희를 사랑해'라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너희는 아빠를 더 강하게 해 주니까...

아들과 딸의 존재는 나를 더 채찍질하게 만든다. 강함은 무엇일까. 밤샘 작업을 하는 체력일까, 하기 싫은 일도 하게 되는 강함일까. 내가 생각하는 강함은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육체적인 힘이, 청소년기에는 지적인 힘이, 성인이 된 후로는 경제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내면의 그림자가 아이들에게 드리우지 않도록, 나를 발견하고, 고치는 작업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삶 속에 구멍이 있음을 알고, 채우려는 노력들.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직시하고,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들. 이런 것이 나에게 강함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너희가 아빠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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