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출장 중 일탈..?!
지난 5월 초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은 컨퍼런스 참여와 본부 및 각 나라별 스텝들이 모이는 행사가 주된 일정이었다. 로열 알버트홀에서 진행된 컨퍼런스를 마친 후 우리 팀원들은 녹초가 되었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엔 다소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결국 체력 안배를 위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정은 일부 인원만 스케줄에 참여하기로 했고, 나와 대표님은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그날따라 런던의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청명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마음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대표님은 “이런 날씨에는 그냥 있을 수 없지, 다 불러야겠다.”라며 일탈을 선언하셨다. 갑작스러운 대표님의 선언에 쉬고 있던 직원들도 외출준비를 하고 옥스포드로 떠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리둥절했지만 런던의 날씨는 그 어떤 일탈도 용서해 줄 만큼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대표님이 가자는데 일탈에 대한 죄책감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옥스포드행 고속버스는 출발했다. 옥스포드로 가는 길 마주한 넓은 들판과 양 떼, 따뜻한 햇살,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잠시 사색에 잠겼다. 대표님은 왜 일탈을 하자고 했을까. 생각의 끝 부분에 다다르자 문득 대표님께 편지를 쓰고 싶었다.
*동휘님, *단비님께 드리는 편지
예전에 저는 가나안 도착이 인생 목표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씻을 때마다 오늘만 버티면, 일주일만 버티면, 올 해만 버티면 가나안에 가겠지 싶었어요. 어쩌면 지금 직장과의 만남도 가나안을 가는 길 중에 있던 경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가나안은 신기루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가나안이란 것이 진짜 있는지, 오늘의 몸부림으로 가나안과 가까워지고 있는 건 맞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걷고 있던 삶이었죠. 그렇게 허덕이는 광야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정을 꾸리면서 광야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날씨가 좋아 떠난 옥스포드로의 일탈을 만끽하며, 고요한 고속버스 안에서 갖가지 생각이 샘솟았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자가진단이었어요. 오늘의 나는 마음도 삶의 목표도 부유하는 광야의 방랑자가 아니었어요. 오늘의 나는 전보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 위에 가정이 생겼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당장 오늘 죽을 것 같은 삶이라면, 가정을 돌보고, 자기계발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요. 이것은 분명 가나안인의 삶이었습니다. 신기루라고 애써 지워냈던 가나안이었는데, 저는 이미 가나안에서 살고 있었네요. 가나안 안에서 살고 있지만, 방랑자의 삶을 살았던 지난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차적응의 필요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이런 생각의 뿌리에 동휘님과 단비님이 계심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라도 더 쥐어주고,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이 수년을 걸쳐 제 마음속 단단한 토대가 되어 있었어요. 어리고 미성숙한 투정, 좁고 작은 생각과 철없는 의견도 존중해 주시는 두 분의 사랑과 배려가 제 마음속 토대를 더 밀도 있게 채워 주셨습니다.
'How was your journe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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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ford_tube
옥스포드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의 여정을 묻는 전광판의 질문에 ‘나는 돌아가 안길 품이 있어 행복한 여정이었다고, 그리고 그 여정에 동휘님과 단비님이 있어 빈틈없이 안정감 있는 여행이었다’고 대답해 봅니다.
*우리 회사는 대표님 포함 모두 직함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소통한다.
*동휘님과 단비님은 부부이다.
동휘님과의 인연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집은 서울살이에서 밀려나 수도권으로 파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찾게 된 교회의 청년부 담당 목사님이 동휘님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나의 삶과 일상에 대해 나누고, 위로받고 응원받는 관계가 되었다. 몇 년 뒤 동휘님이 NGO의 대표로 임명되면서, 목사와 청년으로 시작된 인연은 직장 보스이자 인생의 멘토, 큰 형님 같은 관계로 지속되고 있다.
이날 동휘님은 왜 뜬금없는 일탈을 선언했을까. 짐작해 보건대, 영국이 처음인 나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여러 형편으로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나와 먼 이야기인 삶을 살았기에, 이번 기회에 아빠가 아들에게 세상 구경 시켜주는 마음이셨을지도 모르겠다.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는 스릴과 즐거움처럼 다가온 옥스포드 여정을 통해 나를 향한 누군가의 마음도 엿본 것 같아 마음이 뜨끈했던 일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