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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Apr 30. 2023

중년의 초입에 서기 전에

여유에 대하여

요즘 아내와 종종 나누는 대화 주제는 ‘중년의 여유’이다.

중년의 초입, 40대를 몇 년 앞둔 우리 부부는 중년이 된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5살, 4살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 4학년 즈음이 될 것이고, 사춘기를 지내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의 경제 사정은 가늠할 수 없지만, 우리의 건강과 패션, 말투와 분위기는 어떨지 어설프게 그려보곤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부부가 되고 싶은 중년의 모습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여유 있는 중년’ 일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서초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에서 업무와 관련한 작은 설명회가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주말인데도 삼성전자 사옥에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삼성전자의 임직원들을 위한 예식장을 운영해서 붐볐던 것이었다. 삼성전자 사옥엔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내가 한 시간 정도 일을 보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을 꺼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봤어. 그런데 참 대비되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

다양한 세대와 사람이 모인 카페에서 아내는 주로 40대 이상의 남녀를 관심 있게 봤다고 했다. 수수하지만 깔끔한 차림새의 사람들은 올곧은 자세와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정장으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은 굳은 표정과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닮고 싶은 중년과 그렇지 못한 중년의 모습을 둘 다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어림짐작으로 대답했다.

“여기에 예식장이 있어서, 정장 입은 사람들은 하객이었나 보다. 수수하게 입은 사람들은 이 동네가 생활권인 사람들인가 봐. 서초라 그런가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 보였나 보네. 원래 ‘곳간에서 인심 난다’잖아.”


이후 아내와 대화가 이어졌다. 흔히 말하는 ‘강남 사람들’에 대한 대화였다. 아내는 강남 사람들의 경제력보다 여유가 부럽다고 했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재력이 있기에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돈이 많기 때문에 부부관계에서도 여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중년의 여유에는 돈이 필수 조건인 건 아닌지 아내와 대화를 이어갔다. 분명 돈이 있으면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돈이 넉넉지 않아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표정과 말투, 자세와 분위기만 봐서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10년 후 우리의 경제사정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여유 있는 중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여유의 모습은 무엇이며, 한정된 자원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이야기했다.



사실 누가 진짜 강남 사람인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싶은 여유의 모습은 뭘까]

아내와 나는 돈이 가져다주는 여유가 아닌 대인 관계에서의 여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의 무례함에 흔들리지 않는 여유, 힘든 사람이 잠시 기댈 수 있는 여유,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여유, 누구나 편안히 대할 수 있는 표정과 온화함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들은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가질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우리는 이런 여유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여유를 가지려면 필요한 건 무엇일까]

건강한 육체에 여유가 담긴다

내가 육아를 하며 느낀 점은 ‘건강과 체력=인성’이라는 것이었다. 내 육체가 괴로운데 고운 말을 뱉기가 쉽지 않다. 나는 코 관련 질환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요즘에도 만성비염으로 환절기가 되면 꽤나 고생을 하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아이들에게 여러 권의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비염이 심한 날에는 숨이 차서 아이들에게 한 페이지도 읽어주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체력이 부족하면 퇴근 후 집에서 웃음보다는 무표정, ‘그렇구나’라는 포용보다는 ‘왜 그러냐’는 질책이 앞선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지만, 그 정신은 육체의 그릇 안에 있다. 그릇에 금이 가고 물이 새면, 정신도 따라 새어나갈 것이다. 든든한 체력을 뒷받침해 주는 건강이 여유의 기본 토양이다.


내 정서적 약점을 다루는 사람

그다음은 나의 정서적 역린을 잘 파악해야 한다. 역린은 용의 가슴 비늘 중 반대로 난 비늘로, 용의 약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나의 정서적 상태와 약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이 나를 힘들게 하고, 화를 내게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어야 내 ‘날 것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잘 다스릴 수 있다. 보통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양육이나 특정한 사건 등으로 인해 이러한 역린이 생긴다. 평소에 그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면 내가 받은 대로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나의 역린을 건드리면 욱하고 화내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기에, 때로는 역린을 숨기고, 때로는 역린을 잘 다스려 더 이상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의 정서적 약점으로 인해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여유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의 무례함이 나를 흔들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만약 그 무례한 사람이 누군가의 말로 변할 사람이었다면, 지금 내 앞에서 이런 무례함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곧 초면인 나의 말로 이 사람이 변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마음을 바꿔야 나의 여유를 지킬 수 있다. 비단 무례한 사람뿐만 아니라, 여기엔 내 아이들도 포함된다. 아이들은 나와 다른 타인이다. 독립된 인격체이다. 그러기에 그들을 내 생각대로 고치려 하면 안 된다. 때로는 속이 부글거려도 그들이 스스로 변할 것을 기다릴 때도 필요하다. 기다리지 못하고 욱하면, 내가 아이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내가 그토록 바라는 여유는 없어질 것이다.


외모에서 풍겨 나는 여유

중년이 되어도 가꾸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편한 차림을 더 선호하게 된다. 항상 피로와 싸우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세월이 무상하게 빠지는 머리카락과 부풀고 쳐진 몸매는 ‘아저씨, 아줌마’가 되게 한다. 외모와 여유가 무슨 상관이 있냐 싶지만, 이것은 나를 지키는 일종의 갑옷과 같다. 옷을 잘 차려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함을 당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속물 같이 보일지 모르나 사실이다. 나는 키가 작고 동안인 편이라 편하게 옷을 입은 날이면, 50대 이상의 남성들은 초면임에도 나에게 쉽게 반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정장을 입은 날엔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심지어 전에 반말을 하던 사람도 “어디 좋은 데 가시나 봐요?”하며 존대를 한다. 남들로부터 무례한 공격을 받지 않는 것도 나의 감정적 여유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처럼, 내 표정, 인상, 체형과 분위기가 나를 설명해 준다. 거북목에 배가 불룩 나온, 김치찌개 국물이 상의에 묻은 중년의 남자를 보며 ‘여유 있다’고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짜’를 가진 자의 여유

마지막으로 여유를 주는 것은 ‘진짜’가 되면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여유가 있다. 조바심을 내거나 작은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결국 결과를 만들어 낸다. ‘진짜’는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가 아닌 가짜의 여유는 거짓이고 사기와 다름없다. 결국 내가 가진 능력이 타인에게 신뢰를 줄 만한 것이 될 만큼의 경지가 되어야 ‘여유’가 생긴다. 가짜의 여유는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이다. 덧붙여 40대의 실력은 단순 업무해결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규모가 작더라도 리더의 자리에 서야 한다. 쉽게 말해 사람 다루는 일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중년의 여유는 그간 사람을 상대하면서 쌓인 내공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어느 정도 읽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닐까. 중년에는 나를 더 잘 알고, 남들도 어느 정도 알게 되는 경지가 되길 바란다.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공통점]

살면서 특유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사람들과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는 현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구김 없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이런 사람에게는 신뢰가 생긴다. 그리고 이들에게 일을 맡기고 싶거나, 함께 일하고 싶어 진다.


비록 지금 당장의 우리 가정이 부자는 아닐지 언정, 아이들에게 부모의 여유가 주는 안정적인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 물론 그만큼의 인격의 수양이 필요한 덕목이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되고 싶은 중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왜냐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까.


이런 중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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