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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Aug 28. 2021

왜요? 제가 IT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그래요. 나 스타트업 다녀요.

IT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첫 일주일은 씻어도 씻어도 손에 땀이 계속 나서 핸드 워시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내가 긴장해서 그런 거였다. 일주일쯤은 출근에 의의를 두며 설렁설렁 적응해나가는 기간이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출근 첫날부터 빠르게 처리해야 할 나의 일이 있었다. 신입이 아닌 경력직이기에 뭔가 전문적인 면모를 뽐내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데….

그렇다고 짤렸다거나 그만둔 건 아니다. 어쨌거나 3개월의 수습 기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회사에서는 수습이 끝났다는 그 어떠한 언급도 없이 나는 자연스레 안착했다. 나까지 까먹을 뻔한 나의 세 번째 회사 정착은 원티드가 챙겨줬다. 세전 50만 원. 통장에 찍힌 금액은 45만 6000원이다. 나를 위해 누가 이런 축하금을 줄까. 나는 결혼도 안 할 거라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돈으로 축하받는 건 아마 다음 회사를 또 원티드를 통해 들어가는 일 아니면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글을 보는 모두가 원티드를 통해 이직해서 축하금을 받길!


업계와 직무를 모두 전환한 환승 겸 성취 이직이었다. 정말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급격하게 겪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했고, 다시는 돌아가기 싫다. 그간 경험이 내 생각과 태도를 어떻게 바꿨는지 정리해봤다. 지난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지만, 울컥 치밀어 나올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나는 충분히 해내지!’ 일에 대한 오랜 방황을 겪으며 긴 시간 동안 이직 준비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되뇌던 말이다. 너무 불안한 마음에 시작한 명상을 하면서 얻어낸 문장이다. 사실 내가 원하는 산업과 직무로 이직을 충분히 해낼 거라고는 완전히 믿지는 않았는데, 정말 해내고 나니 이제는 내가 나를  믿게 됐다. 캘리포니아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날씨 덕분에 갖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나의 긍정은 지금 다니고 있는 IT 스타트업이 연평균 100% 이상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말할  있다. 전에 몸담았던  곳의 회사는 사양 산업의 대명사 종이 잡지를 발행하던 회사라  안다. 길게 말은  하겠다.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을 프로젝트를 본업(잡지 만드는 ) 함께하다 결국에는 흐지부지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해주겠지. 지금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대부분의 일에서  되는 이유 말고 되는 방법을 찾게 됐다. 충분히는 아니어도 가까스로는 해낼  있을  같은 느낌이 든다.


커리어에 대한 불안

일이 정말 많다. 가끔은 심장이 멎을 듯하게 바쁠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고 포트폴리오에 넣을 일이 차고 넘칠 것 같은데 나를 받아줄 회사가 없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실 전에는 나를 받아줄 회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에 대한 결핍이 컸기에 더 불안했다. 여전히 전문성에 대한 고민은 있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 없이 묵묵히 코딩에 집중하는 옆자리 개발자들을 볼 때면 특히나 커진다. 그런데 뭐 팟캐스트 빅리틀 라이프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커리어 고민>을 들으니 어떤 직종이든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가지고 있던걸.


스타트업.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고 그 안에서 보람을 느끼거나 어떤 기쁨을 얻는 것이라는 마인드셋으로 다 같이 성장을 하려는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 나도 어느새 스며들었는지 ‘성장, 몰입, 효율성’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가끔 포착한다. 나도 모르게 일에 몰입하는 순간이 늘고 있다. 그렇게 일을 한 날은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낸 날. 커리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아무런 의문도 없이 잠들 수 있는 날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 매일을 살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매일 그런 날들로 채워보기로 했다.


요가에 진심이 된 사람

이직 후 처음 한 달은 회사뿐만 아니라 일하지 않는 나에게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 퇴근 후 저녁과 주말에는 대부분 이직을 위해 나의 일을 정돈된 단어와 문장으로 포장하는 일을 반복했었다. 그 치열함이 사라지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이 공백이 당황스러웠다. 동료들처럼 출근 전에 운동해야 하나. 급격히 떨어진 체력을 올리려 PT를 받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원래 하던 요가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진짜다.


나는 사회생활과 함께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 수련은 방황하던 내 커리어만큼이나 꾸준히 이어나가지 못했고, 코로나19와 이직 준비로 언제나 뒷전이었다. 이제 당분간은 이직할 일이 없으니 요가에 몰입하기로 했다. 요가원을 꾸준히 나가고, 가지 못한 날은 유튜브를 틀어 놓고 혼자 수련한다. 그러다 얼마 전 개인 요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요가에 진심인 사람이라니! 이러다 지도자 과정까지 밟는 건 아닌지 걱정과 기대가 함께 몰려온다.


서른 즈음에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그동안 그렇게나 박복했던 동료복이 왜 이제서야 왔나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지금이라도 찾아와줘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CEO도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회사. 우리팀에서 인턴을 제외하고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마음에 든다. 다만,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C 레벨과 팀장을 제외하곤 직급도 모두 매니저로 통일한다.


첫 회사에서는 나 빼고 모두가 직급이 있었다. 워낙 회사가 작다 보니 연초가 되면 의사 결정권자의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 결정된 진급으로 직급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다. 규모가 컸던 두 번째 회사는 그 회사에 다닌 지 7년이 지나야 과장 직급을 달아줬다. 대리가 달 연차에 여전히 사원에 머무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직급과 상관없이 그저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내 나이 30살. 우리 팀장님이 말했다. 일 욕심 한창 많고 높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나이에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돈 버는 일은 힘들지

커리어에 대한 불안함은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일을 맞이할 때면 버겁기도 하다. 업무가 몰려 새벽에도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면 이러다 일에 잠식되고 마는 건 아닌지 항상 경계한다. 6개월에 한 번씩 업무에 대한 평가가 적힌 숫자를 확인하게 된다. 그 수치는 연봉 인상률의 척도가 된다. 퇴사자와 입사자가 수시로 드나든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는 동료들의 속내를 눈치채는 일들도 생긴다. 역시나 돈 버는 일은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 안 된다. 순탄하기만 한 일은 없나 보다.


고작 삼 개월이다. 앞으로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이 나의 일하는 마음을 위협하겠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의 끝을 보고 떠나련다. (이 다짐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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