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영덕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니 바로 울진군이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SNS의존형 인간인지라 인스타그램에서 #울진맛집, #울진카페 등을 검색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온 곳이 바로 후포리의 동심식당이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기다림 끝에 받은 참기름 향이 솔솔 나는 전복죽에 김치와 고추 장아찌가 모두 맛있었다. 식당에서 조금 이동하니 물치상회라는 카페가 있어 잠시 쉬어갔다. 날씨가 아주 맑았기 때문에 실내에 있을 순 없다 싶어서 구산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JTBC 캠핑클럽을 재밌게 봤다면 효리언니가 나무를 끌어안고 요가를 했던, 유리언니가 돗자리 깔고 누워서 책을 읽었던 바닷가 솔밭을 기억할 것이다. 그 해변이 바로 울진에 있는 구산 해변인데 가보니 실제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해수욕장은 공사 중이었는데 사람 없는 솔밭 그늘에 자리 잡고 앉아 마스크도 벗고 한참 시간을 보냈다. 바람은 시원하고, 고개 들면 파란 바다가 보이고.. 캠핑의자를 산 후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한없이 앉아있을 수 있었지만 기다리는 일정이 많아서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울진은 동선이 꽤 긴 데다가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져 이동시간이 길었다. 불영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절이 나왔다. 계곡을 따라 절까지 가는 길에서 금강송 숲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연못이 무척 아름다웠는데 여승들만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더 아기자기하게 보였다. 땡볕에 꽤나 걸었더니 전복죽이 다 소화가 되어서 입구 막걸리 집에서 감자전을 허겁지겁 먹었다.
휴가의 최종 종착지는 덕구온천이었다. 덕구온천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부터 나는 덕구온천에 가보고 싶어서 틈만 나면 후기를 찾아봤다. 물이 그렇게 좋다던데, 객실도 리모델링해서 넓고 깨끗한 데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덕구온천리조트에는 콘도와 호텔이 있다. 둘 다 리모델링이 되어 깔끔하지만 조금 더 넓어 보이는 콘도를 선택했다. 다만 온천은 호텔 쪽에 있기 때문에 콘도에서는 이동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숙박에 무제한 온천 이용권, 저녁식사 삼겹살 세트와 편의점 이용권까지 묶인 상품을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렴하다). 온천은 목욕하는 공간과 수영복을 입고 이용하는 스파월드로 나뉘어 있었다. 스파월드는 다소 규모가 작았지만 야외 노천탕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덕구온천은 물 온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평소 일주일에 두세 번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던 남편은 코로나 시대에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것인데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나왔다.
이곳은 특이하게 따로 식당 운영은 하지 않고 테이블과 불판을 대여해주되 고기와 야채, 쌈장 등을 팔고 설거지까지 모두 셀프로 해아 하는 시스템이었다. 따뜻한 물에 흐물 해진 몸으로 먹은 삼겹살은.. 다들 뭔지 알잖아요?
오랜만에 푹 잠을 자고 다음날 오전에 한번 더 목욕을 했다. 짐을 챙겨놓고 덕구계곡을 따라 짧은 등산을 했다. 특이하게도 길을 따라 온천수가 내려오는 수송관이 이어졌는데 덕구온천에 대한 신뢰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서른 넘어 시험 준비하느라 지친 나에게도, 공부하는 파트너 때문에 마음 놓고 휴가도 못쓴 남편에게도 꼭 필요했던 여행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데에 왜 가느냐면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서다. 가봐야 할 맛집, 카페, 핫플이 아예 없거나 한두 군데 정도밖에 없다면 동선과 마음이 무척 명료해진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