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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erely yours Oct 27. 2022

기꺼이 외로워하기

2011년 남인도 마말라푸람


장기워크캠프로 인도에 머무는 3개월 동안 주말을 이용해 작은 여행들을 했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 해안에 위치한 빠랑기뻬따이(Paranggipettai)라는 작은 마을에 터를 잡고 주로 타밀나두 주 안에서 여행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강원도 안에서 돌아다니는 정도는 아니고 짧게는 4시간, 길게는 밤 버스로 12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워크캠프라는 반복적이고 다소 무료한 일상 속에서 주말여행을 계획하고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게다가 첫 달에는 버스 타는 방법도 잘 모르고 외국인이 적은 남인도에서 동양인 여자가 혼자 다닌다는 게 무섭기도 해서 거의 다니지 못하기도 했다.


​​

내가 머물던 곳에서 가장 가까웠던 번화한 도시는 2~3시간 거리의 폰디체리였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다른 워크캠프 동지들을 처음으로 폰디체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 맛을 본 이후로 자신감이 생겼다. 모로 가도 "뽄디~ 뽄디~" 소리치는 버스만 잡아타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세 달 일정의 중간 즈음 우리를 관리하는 NGO에서 Get together 행사를 방갈로르에서 진행했고, 방갈로르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에 마말라푸람에서 1박을 할 수 있었다. 방갈로르에서 첸나이까지 여섯 시간 기차를 타고 첸나이 역 안에 있는 리타이어링 룸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아침 첸나이 기차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해서 2시간 버스를 타고 드디어 마말라푸람에 도착했다. 지금 하라면 절대 못할 이동이다. 스물한 살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바닷가에 유명한 사원과 코끼리 암벽화를 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다.



'마하발리푸람'이라고도 한다. 인도 남부 첸나이시에서 남쪽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벵갈만 코로만델해안가에 위치한 힌두교 유적지다. 해안을 따라 화강암 지대에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으며, 남인도 사원 건축양식인 드라비다형을 잘 보여준다. 해안에 있는 수천 개의 조각상을 통해 힌두교 시바 신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 (중략) 마말라푸람은 인도 팔라바 문명의 창조적 재능과 예술적 업적을 잘 보여주는 힌두교 유적지로 꼽힌다. 시바 숭배의 중심지 중의 하나여서 남인도 시바파 성지순례의 출발점으로 인기가 높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그렇구나! 힌두교의 유명한 유적지였다. 도시는 아담했지만 관광지답게 호텔과 식당과 기념품점이 거리에 넘쳐났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휴양지 같은 분위기에 몹시 흥분했다. 호텔도 가격 대비 깨끗했고 해변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서양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들이 있었다. 심지어 동양인도 간혹 보였는데 한국에서 온 스님(스님 같아 보이지 않았다)을 우연히 만나 한 끼 식사를 같이 하기까지 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바닷가의 사원은 운 좋게도 입장료가 일시적으로 무료였다(보통 외국인에게는 더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많다). 댕강 잘린 모닝빵처럼 생긴 바위도 보고 유명한 "아르나주의 고행" 벽화도 열심히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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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게 걸어다녔지만 가족 단위의 인도 여행객들이 많아서 조금 외로워져 버렸다. 늘 혼자를 자처하는 성격 탓에 여행지에서 친구를 잘 만들지 못했다. 인도에서 뜬금없이 자기 집에 초대를 한다거나 오토바이로 멀리 있는 유적지에 태워다 주겠다거나 같이 얘기를 하자거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더 조심하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앉아 석양을 보고 있으려니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한창 동아리 친구들과 노는 게 재밌었던 시기에 훌쩍 떠나버렸으니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친구들 사진을 보면 질투가 나고 나는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우울해지기도 했다. 엽서를 잔뜩 사서 전하고 싶은 말을 쓰고 과연 제대로 배송이 될지 모르겠는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부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는 혼자일 일도, 크게 외로울 일도 거의 없어서 애정을 가감 없이 전달할 줄 알았던 20대 초반의 내가 귀엽고 조금 그립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외로워하고 그 시간을 만끽하라고 말하고 싶다.




출발 전 개찰구의 기차
고급 익스프레스 기차도 있지만 일반 기차를 타고 6시간의 요통을 얻었다
번듯한 첸나이 버스터미널(CMBT)
차장이 툭툭 끊어주던 버스표. 늘 바가지 쓰는건 아닌지 의문이었다
버스 자리를 맡아두고 간식거리를 사오는 여유
탄산음료와 Lays 감자칩이 가득
동남아 휴양지 같았던 메인 거리
럭키데이
해변가에 있는 힌두사원
7세기에 지어진 것 치고는 놀라운 보존력. 큰 감흥은 없었다
인도양. 날씨가 좋아서 더 외로웠다
아르나주의 고행 암각화. 정말 섬세해!
버터볼, 흡사 흔들바위
어디에나 있는 염소들
아주 깨끗했던 숙소
이만하면 방도 깨끗! 하지만 밤에 모기의 습격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호텔 방 열쇠를 일기장에 그려보았다
해질녘 저 멀리 보이는 낮에 본 사원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언제나 일기장
혹은 엽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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