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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서기 Feb 20. 2023

내 입 안에서 10점

2~3주에 한번쯤이었다.


내 인생에 치과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뒤늦게 교정을 받기로 하면서 치과를 2~3주에 한번씩 드나들게 됐다.


살면서 충치 하나 생긴 적이 없어

1년에 한번 무료 스케일링 받는 게 전부였는데,

그나마 스케일링 받을 때 시린 느낌도 싫어서 치과를 잘 안 가곤 했는데,

어쩌다 치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게 됐다.


잘 몰랐는데, 아니 부정확한 언급일 수도 있는데

치과교정과가 그래도 치과보다는 조금 더 기술이 필요해서 그런지 몰라도

치과에서도 선호하는 진료과라고 한다.


이 말에 공감하는 게

치아는 정말 단단하지만

이 치아를 마음대로 옮기고 깎고 밀고 당기고

못 하는 게 없는 게 치과교정과 의사들이다.


치아를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진다.

시간의 힘이 필요하지만 당장 치과교정과 안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가능하다.

치아를 깎아낼 때는 타는 냄새가 나면서 마치 치아를 굽는 듯한?? 냄새까지 느낄 수 있다.


처음에 나의 담당의사는 그녀가 아니었다.

나이가 있으신 베테랑 교수님이 내 진료의사였으나

그는 레지던트 의사들에게 가이드를 하고 체크를 하고 지시와 육성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젊은 남성 레지던트가 내 담당이었는데

그는 여성보다 더 섬세한 손길과 친절하면서도 환자에 최대한 공감해주는 말투로

나를 대해줬지만

실상 치료를 다 받고 난 후의 결과는 상처뿐이었다.


뭔가 잔실수가 많았고, 어떤 때는 톱니바퀴 같은 걸 고속으로 돌리는데

입술 옆쪽을 건드려서 정말로 입이 찢어지는 두려움을 겪게 만든 이후에

나는 담당의사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교체를 요청했고

담당의사는 매우 미안해하며 여성 레지던트를 배정해 준 것이었다.


그녀는 성격 덕분인지 조금 더 경력이 있어서인지

무심한 듯하면서도 적당히 건조한 말투로 내 고개의 방향을 지시했고

입 안에서 철제 기구를 거침없이 다뤘다.

땡길 때 쑥 빠져서 쇠로 된 기구가 이빨을 때리는 고통에도 그녀는 사과 없이 차분했고

치과의사들 특유의 '불편하세요(=아파요)'라는 말도 그리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레지던트 교체라는 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겪고 대타로 투입된 만큼

약간의 동료의식을 발휘해 내 치아를 더 거칠게 다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섞인 의심도 잠시,

초반에는 뭔가 내 입 안이 어색해서일까 사소한 통증들이 생겼었는데

나중에는 이 또한 점점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실력과 경험이 더 있는 의사 같았고

어느날 나는 입안을 기구로 치면서 휘젓는 시간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잠시 잠이 드는 지경에 이른 적도 있다.

누우면 워낙 잘 자는 성격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황당하긴 했다.


치과 치료라는 게 항상 긴장이 돼서 절대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가 없는데

몇개월에 이르는 치과 치료를 쉽사리 받게 해준 그 대범함이란.


마치 위기 앞에서도 감정을 조절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겠다는,

나는 그만큼의 능력과 실력을 갖췄으니 사소한 장애물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자신감과 신뢰를 갖춘 리더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첫 번째 대답은 건조하게 해주고

이해가 안돼서 재차 질문을 하면

사실상 다르지 않은 대답을 약간의 짜증을 섞어 다시 해주긴 했지만

말을 군더더기 있게하는 편도 아니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10점이 아닌 7점으로 전락하는

양궁의 한 발, 한 발을 쏘는 여성 궁사들이 떠올랐다면 과장일까.


지난주가 이 병원의 치과교정 마지막 치료였고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녀는 당연히 특별한 말이 없었고

내가 집에서 스스로 해야 할 치료에 대한 주문이 전부였다.


앞으로도 쭉

두려움 없는 퍼펙트골드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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