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일지도 모를 양보
'먼저 사세요'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먼저'라는 뜻의 손짓과 눈짓의 양보를 건넨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순간 허탈해졌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그녀는 나의 양보 덕분에 더 큰 행운을 얻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던 것이다.
복권판매점 앞은 복불복이다.
복권의 당첨 여부처럼 어떤 때는 한산하다가도, 어떤 때는 사람들이 몰려 줄을 이룬다.
줄이 생겨 뒤에 서게 되면 괜히 무안해진다.
지나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괜한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부끄러움 때문에 복권을 평생동안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봤다.
구정연휴 새해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을 인삿말처럼 자주 건네주고받던 그 때쯤
그냥 막연히 당첨이 될 것 같은 들뜬 기분에,
연휴라는 행복한 시간을 앞두고 괜시리 들뜬 기분에
복권을 사러 판매점을 찾았던 그날
난 그녀를 만났다.
잘 모른다 누구인지 그녀가.
다만 뭔가 어정쩡하게 줄을 선듯 안선듯하여
나는 손짓을 거네 양보했을 뿐이다.
먼저 사세요라고.
그녀는 겨울에 쓸법한 하얀 털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긴 했지만 얼굴을 아예 가린 상태는 아니었다.
아예 눈이 안보였으면 내가 그냥 먼저 샀을 것이다.
그녀는 복권을 살 마음은 있었지만
줄은 적극적으로 서지 않았고
복권을 적극적으로 사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줄에는 서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느껴졌다.
나의 양보의 손짓을 받아든 그녀는
아래로 내리깔았던 눈을 한번 더 수긍의 눈빛으로 내리깔고
나의 앞으로 서서 복권 구매의 순서를 기다렸다.
앞앞사람이 복권구매를 모두 마치고
그녀의 순서가 됐을 때
섣불리 주인장에게 어떤 복권 얼마어치를 달라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연금복권을 달라 하면서도
저 복권은 뭐에요 라고 묻는 걸 보니
괜히 양보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까의 그 쭈뼛거림이 이해가 되며
무슨 어려운 집안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괜시리 선행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작은 선행마자 나의 복권 당첨운에 더해지지 않을까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결국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연금복권 2천원어치에 스피또 3천원어치를 사고
로또 5천원어치를 샀다.
1만원으로 참 여러가지 알차게 사는 모습이
복권초보구나라는 걸 느껴지게 하면서도
뭔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다는 기운을 느끼게 해줬다.
하지만 복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아직 부족해
구매 시점에 망설였지만
다행히 착한 주인장을 만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원하는 복권 구매에 성공했다.
나의 선택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단순할뿐.
연금복권 아니면 로또다.
그냥 기분에 따라 둘중에 하나 1만원어치 산다.
내가 여기 복권판매점을 찾는 이유는
앞선 초심자에게 대한 그런 친절함 때문이다.
웃으면서 팔아주니 뭔가 더 잘 될 것 같은
기분좋음이 이 가게를 찾게 한다.
그럼에도 그날 어처구니 없는 후회에 잠시 빠진 것은
내가 양보한 그 순서가 나의 순서였으면
그래서 그 복권이 나의 손에 들어왔고
만약에 그 복권이 당첨복권이었다면?! 이라는
한심한 생각 때문이었다.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인생이란 우연의 연속에 그럴 수도 있기에
그 핑계로 술잔을 한번 더 들었다.
나에게 행운은 아직 먼 일이지만
초심자인 그녀에게는 작지 않은 행운이 갔을 수도.
양보는 항상 좋은 것이라 배웠지만
후회가 생각나는 양보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