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마타 만다라>(2020) - 하라 가즈오
미나마타와 느린폭력
<미나마타 만다라>는 러닝타임이 총 372분으로, 6시간이 넘는 상당히 긴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이 이렇게 긴 상영시간(이것도 많이 잘라낸 것일테지만)을 택한 이유에는 느린 폭력이라는 미나마타병의 속성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미나마타병을 둘러싸고는 공식 확인(1956년, 그러나 이미 1941년부터 유사한 이상 증세를 보인 환자들이 있었다고 한다)으로부터 오늘날까지 6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투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한 느린 폭력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인 느린 기록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미나마타병의 A to Z까지가 이 작품에는 담겨있다.
영화 속에는 무책임한 일본 정부와 구마모토현의 태도, 투쟁의 지난한 과정, 증명의 험난함 등이 잘 담겨있다. 나리타 공항 반대투쟁에서도 그랬듯 행정은 언제나처럼 미나마타에서도 환자/피해자들 사이에 선을 만들어 분열시키고 싸움을 조장한다. 그 과정에서 운동 속에는 여러가지 입장과 갈등이 생겨난다. 역설적으로 미나마타 안에서 미나마타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욱 꺼리며 터부처럼 되었다. 물론 그것은 칫소라는 기업이 미나마타 경제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과도 관련이 깊다.
미나마타병은 처음부터 극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정부는 더 이상 미나마타병에 대해 판단할 기준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이미 오류가 드러난 1977년의 미나마타병 판단기준을 고치려 하지도 않는다. 미나마타병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대법원에서 승소한 미조구치와의 면담자리에서 일본정부를 대표하여 나온 관료는, 1995년 당시 미조구치가 사과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나마타병에 대해서는 1995년에 국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라고 말한다. 이는 1965년 당시 수면 위로 드러나지조차 않았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1965년 합의로 그것을 포함하여 모두 해결되었다'라고 말하는 일본정부의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러한 행정의 방기 속에서도 환자들은 계속해서 투쟁하며, 그 주변에는 에키노나 니노미야와 같은 의사를 비롯 여러 활동가와 지원자들이 있다. 미나마타병을 학문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지난한 조사 활동을 이어온 에키노는 말한다. "(미나마타병 연구에)시간이 오래걸리니 아무도 하려 하지 않고, 나 역시도 더이상 구마모토 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완전히 고립무원이다." 느린 폭력과의 싸움을 개인으로 감당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또 영화 속에서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미나마타와 조선(한국)의 연결성이다. 미나마타는 조선이라는 기표와 아주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기 흥남에 존재했던 칫소 공장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피차별민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한 연결은 단순히 관념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나마타와 조선은 실재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 미나마타병 환자 이코마가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그의 아내 사치에가 아버지가 조선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못하던 차에 이코마와 결혼을 택했다는 사실로부터 드러난다. 미나마타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러 오사카로 나와야 했던 것도 많은 수의 조선인들이 오사카에 모여 살았던 것과 겹쳐진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여러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긴 세월에 걸쳐 촬영한 작품이다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투쟁하는 사람들의 늙어가는 모습이 주는 감응도 엄청나다. 단순히 기쁘다 슬프다하는 감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보고 있는 우리도 그 세월을 함께 한(전혀 그렇지 않지만)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그 속에 살짝 살짝 등장하는 하라(감독)도 꽤 많이 늙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기획도 넘실댄다. 한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이코마의 결혼이야기를 들어보자, 시노부의 짝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등 여러가지 기획이 교차하며 펼쳐진다. 미나마타병 환자들을 단순한 피해자로서가 아닌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조명하고 있다. 미조구치 재판의 승소를 기념하며 모두가 기뻐하며 만세를 하는 순간에도, 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미조구치의 아들(소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을 중심에 놓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하라의 다큐멘터리에는 힘이 있다. 사실 그의 전작 <레이와 시대의 반란>(2019)을 보고나서는 요즈음의 그의 작품들이 초기 작품들에 비해 못하다는 생각에 좀 실망했었는데, 다시 한번 하라에게 감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