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나는 뼛속까지 내향형이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밖에 서있기만해도 기운이 빠진다. 근데 다른 나라에서의 외출은 체감상 50배 이상의 속도로 기가 더 빠르게 소진된다. 서울에서는 10km의 속도로 기가 빨렸다면 미국에서는 500km의 속도로 기가 빨린달까. 상상이 가는가? 500km의 속도로 기가 빨려 안광을 잃어버리는 아시안의 모습이?
미국에 오고 일주일 정도 됐을 무렵 근처(라고 했지만 차로 2시간 걸림) 큰 도시에 가서 하루종일 장을 봤다. 이케아도 가고 코스트코도 가고 필수 코스인 한인마트도 들렀다. 그리고 이 날, 밤 9시에 잠들어 꼬박 12시간 후에 깨어났다. 당연했다. 준비한 기력을 모두 다 빨리고도 남았으니까.
미국에서 외출을 하면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사실 남들 말이 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편할 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저 말을 듣고 있는 내 귀가 불쌍하다’ 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으니까. 근데 오히려 안들리니까 집착하게 됐다. 이건 마치 하지 말라니까 하고 싶어지는 인간불변의 법칙과 유사하다.
심지어 미국은 스몰토크의 나라다. 아시아인에게는 말을 잘 걸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스몰톡의 나라는 스몰톡의 나라다. 나에게 직접 누군가 말을 했는데 100% 알아듣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답하는 순간 찝찝함이 하루종일 계속 된다. 내가 실수했나? 내가 예의없었나? 자기검열의 나라에서 태어나 평생 자기검열을 하고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상황들이 아주 끔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동굴 속에 있을 수 없으니 하루는 도서관에 가서 혼자 대출카드 만들기를 시도했었다.
첫째, 웰컴데스크에가서 나 도서관카드 만들고 싶어, 어떻게 만들 수 있어?(전날 번역기에 돌리고 하루종일 연습함) 라고 물어봤다. 직원이 저 쪽 라인에 서라고 알려줬다.
둘째, 체크아웃 데스크에 가서 대출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근데 미국인과의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 재앙이 찾아왔다. 직원이 포토아이디를 달라고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신분증? 여권 같은건가? 라는 사고의 흐름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바짝 긴장하여 그게 뭔데…하는 상태였다. 내게는 ‘passport’만이 여권이니까. 남편이 도와줘서 여권을 내밀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잔뜩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어찌저찌 남편의 도움을 받아 대출카드를 손에 쥐고나서 내가 들은 것과 남편이 이해한 것을 비교해보니 난 대략 30%만 알아들은것 같았다. 아예 모르는것보다 애매하게 아는게 더 무서운거라고…정말 무서웠다.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더.
세번째, 해리포터 시리즈를 찾고 있었는데 검색해도 어딨는지 모르겠어서 결국 서비스 데스크로 갔다. 안물어보고 혼자 찾고싶었으나 (난 한국에서도 직원에게 말 안거는 인간이라고!!!!) 남편이 옆구리를 계속 찔렀다. 우는 표정을 감추고 직원에게 물었다. ‘나 해리포터 시리즈 찾고있어. ROW J가 어딨어?’ 그때 내 입에서 나온 ‘해리포터 시리즈’라는 발음이 순간 너무 구려서 수치스러웠다. 근데 그 직원의 말을 나는 또 정확히 못알아들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자 직원은 뭘 찾고있냐고 친절히 다시 물어봐줬고 나는 한 번 더 수치스럽게 ‘해리포터 시리즈’를 발음해야만 했다. 위의 세가지 상황 중에 내가 쓴 영어는 사실 5 마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5마디를 뱉은 이후 기가 쪽 빨려서 대출은 세계 최고의 발명품인 무인기기로 하는 엔딩을 맞았다.
나는 심지어 혼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할 때도 바짝 긴장한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의 세상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 혹시나 실례가 될까 하는 자기검열은 산책 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미국은 다들 차를 타고 다녀 산책 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 나는 미국을 주로 크리미널마인드 같은 범죄 드라마로 접했는데 그런 드라마에서는 피해자들이 꼭 혼자 러닝 또는 산책을 하다가 죽는다. 당연히 드라마일 뿐이고 내가 있는 곳은 안전하다는걸 알지만…저 멀리 사람이 보이면 돌아가고, 차 소리가 들리면 긴장하여 멈춰서는게 반복된다. 그러다보면 한국에서는 1시간도 거뜬히 할 수 있던 산책이 기력부족으로 20분에서 끝나게 된다.
외출하는 것, 말하는 것, 산책하는 것 등등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미국에서는 단전에서부터 용기를 끌어올려야 가능해졌다. 한국에 살 때는 겁쟁이어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사람이랑 말하기 싫으면 무인기를(미국에 오고나서 가장 그리운 존재 1위) 쓰면 됐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미국 시골, 무인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앞으로 용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겁쟁이로 살아야 한다. 용기가 자기의 소중함을 몰라주던 주인을 괘씸하게 여겨 다 사라져버렸을까봐 무서운 나는, 정말 겁쟁이가 맞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땅으로 꺼질 수도, 하늘로 솟을 수도 없으니 이 미국 땅을 정복하는 수밖에. 앞으로 겁쟁이가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열심히 기록해보겠다. 단전에서부터 용기를 끌어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