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1일차,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눈을 떴다. 전날 미루고 미루던 짐싸기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도 했고,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두근거림으로 쉽사리 잠들지 못해 3시간밖에 못 잤다. 무겁고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는게 빠를지 모르지만, 거대한 캐리어를 들고 타기도 어렵고해서 가까운 삼송역으로 갔다. 삼송, 연신내, DMC를 거쳐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 30분. 공항에서 해야할 미션이 몇가지가 있었다. 첫째, 패딩보관. 카드사 할인으로 약간은 저렴하게 옷을 맡겼다. 둘째, 환전. 트래블월렛이라는 앱을 통해 환전했는데 이건 공항에 고정된 부스가 있는게 아니고 직원분이 돈을 들고 공항에서 고객을 기다린다. 마치 중고나라 접선하는 것마냥 '어디어디서 뵈요'를 통해 환전을 했다. 셋째, 유심. 이거는 뭐 그냥 가서 들고 오는 것일 뿐. 그렇게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하고 위탁수하물까지 처리하고 나니 10시. 11시 20분 비행기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면세점에서 약간의 사치를 하고 드디어 9개월을 기다린 방콕행 비행기, 그 좁디 좁은 좌석에 얄팍한 몸뚱아리를 구겨 넣었다.
마음의 부담을 안고 떠나는 여행길. 장장 6시간이라는 비행 시간동안 한국에 미처 남겨두고 오지 못한 고민과 대책 세우기에 온 정신을 쏟았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고통도 기쁨도 즐거움도 좌절감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은 총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고통의 양은 정해져 있다. 학생일 때 고생하면 직장인일 때 많은 것을 누린다. 반대로 학생일 때 누린게 많으면 직장인일 때 상대적으로 가진게 없다. 이런 식이다. 즐거움, 유희도 다 그렇다. 미리 땡겨서 누리면 언젠가 갚아야 한다. 대출처럼. 그렇게 그렇게, 미리 즐겨버린 것들에 대한 상환을 해야 하는 2020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의지만 있으면 실행할 수 있는 답, 작전을 짜고 얼마 후 비행기는 방콕에 도착했다.
신종코로나 폐렴이 한창이다. 엄마는 대체 이 시국에 해외를 가는게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위생 또 위생, 건강 또 건강, 긴장 또 긴장을 강조하셨다. 집을 나서며 엄마에게 "무슨 군대가는 것 마냥 걱정을 하셔." 했더니 군대보다 이번 여행이 더 걱정이시란다. 엄마의 걱정을 위해, 출발 전 진실히 기도를 드리고 떠났다.
신종코로나 폐렴으로 인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사라졌다. 방콕의 돈므앙, 수완나품 공항은 중국발 단체 관광객들과 도착이 겹치면 지옥의 입국 심사를 경험하게 된다. 두 번 겪어봤는데, 기다리는 줄만 두 시간은 걸린 듯 하다. 가족애가 강해서 그런가 새치기 참 잘하더라, 그 분들. 아무튼, 이번에는 줄이 아예 없었다. 거의 한국으로 귀국했을때 받는 심사 수준? 엄청난 속도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분이 채 안된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20분. 이럴 줄 알았으면 환승 비행기를 더 이른 시간대에 잡을 껄. 처음 와본 돈므앙 공항을 1층부터 4층까지 돌고, 맛도 더럽게 없는 식당을 골라버려서 의미없는 첫 식사를 하고, 벤치에 앉아 유튜브로 태국어를 공부하며 무려 5시간을 보냈다. 여행 전 충분히 공부하고 싶었는데, 사람 참 한결같다. 시험 발표 뿐만 아니라 이젠 여행 준비까지 벼락치기다.
지금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 태국 북부의 중심 우돈타니로 향하는 비행편을 기다리고 있다. 에어컨 때문인가, 쌀쌀함이 느껴진다. 폐렴이 유행하는데, 이럴때 감기라도 걸리면 위험할 수 있다. 오늘은 우돈타니에서 뜨끈한 국물의 밥을 먹고 뜨듯하게 자야할 것 같다.
오랜 시간 기다리고 준비해온 이번 여행, 안전하고 무사히, 즐겁고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고생할 때는 열심히 의미있게 고생하고,
누릴 때는 제대로 누리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