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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N Mar 13. 2020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태국여행

2일차 (2월 초 여행)

우돈타니 #1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침,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잠에서 깼다. 수개월간 상상하고 그려왔던 우돈타니에서의 아침.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는 장시간의 비행  밤 10시에 가까운 시각에 호텔에 들어왔다. 호텔 주변을 둘러보니 영업 중인 곳이라고는 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외국인 특히 백인 아재들을 상대로 하는 바(bar)들 뿐이라 그들 중 한 곳에서 맥주 한병 하고 호텔로 들어와 바로 뻗어버렸다.

우돈타니 국제공항. 수완나품이나 돈므앙같은 공항보다 이런 작은 공항이 나는 더 좋았다.


 오늘은 앞으로 5일간 머무를 호텔로 이동해야 한다. 짐도 풀어놓은게 없으니 대충 정리하고 씻고 밖으로 향했다. 어제 밤만 해도 차도 없고 길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으나, 아침은 활기가 넘쳤다. 거리를 내리쬐는 햇빛도 너무나 좋았다. 마침 반갑게도 호텔 근처에 꽃집이 있어 꽃을 한 다발을 사고, 편의점에 들러 태국의 우유를 하나 샀다.

덥더라도, 항상 이렇게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를 걷다보면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더욱 더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돈타니로 오기 전,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앱을 통해 태국인 친구(이하 W)를 알게 되었다. 마침 그 친구가 우돈타니에 살고 있어서, 2일차인 오늘 만나기로 하였다. 처음보는 현지인을 홀로 만나러 간다는 점에서 걱정스런 부분도 있었으나, 그래도 혼자 자유여행으로 오는게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그 친구를 만나 어떤 추억을 쌓게 될 지 모르는 것이기에 만나러 가기로 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친구는 현지인임에도 나보다 더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왼쪽은 쏨땀, 오른쪽은 그외 여러 가지. W는 태국인이지만 쏨땀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인이지만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 처럼.
Udon thani central plaza


#첫 만남, 사왓디 크랍,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낯선 도시 우돈타니의 한 쇼핑몰 안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들으니 너무나 반가웠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W가 웃으며 서 있었다. W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를 연습해온 것이다.




 우리는 우돈타니의 중심가에 있는 Central plaza라는 쇼핑몰 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쇼핑몰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다. 처음 가본 곳이라 안내데스크에 물어보고, 지나가는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며 스타벅스를 찾아갔지만 결국 약속 시간보다 늦었다. 결국 W는 내가 길을 잃은 것을 알고 나를 찾으러 왔다. 아무튼 나도 준비한, 되도 않는 태국어를 쏟아내며 인사를 했다.

사왓디 크랍 (안녕하세요)
폼 츠 OO 크랍 (제 이름은 OO입니다)
폼 뺀 콘까올리 크랍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헌데 관상가 양반,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

 누군가의 얼굴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래를 나타내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 그 사람의 인성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잘생기고 아니고, 예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부정적이고 어두운 삶은 살았던 사람과 밝고 사랑받으며 긍정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의 얼굴에는 그 명암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믿는다. 어른들께서 말씀하시는 얼굴의 '그늘'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웃음이 밝은 사람, 표정이 맑은 사람. 나의 웃음과 표정은 어떨까.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밝은 웃음, 맑은 눈웃음과 표정을 짓게 하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W의 첫 인상은 '맑음' 그 자체였다. 수줍어 하지만 주눅들지 않았고, 가벼운 미소조차 밝아보였다. 큰 눈을 가져서 그런지,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눈을 맞췄을 때 '맑은 사람' 이라고 느꼈다. 착한 첫 인상이라, 나의 경계심은 만난지 몇 분 되지 않아 사라졌다.


 나의 계획은 사실 W와 점심 먹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함께 있으면 재밌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W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평일에 일하는 W가 우리가 만난 일요일을 나에게 할애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먹고 헤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W는 점심부터 저녁까지 이미 나에게 어떤 음식을 맛보게 할 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여줄 지 이미 계획이 한 가득이었다. 어쩐지 편한 신발을 신고 오라고 하더라니.

왓포티솜폰, 우돈타니 박물관, 몽니카페

 

#우돈타니로 온 이유

 

여행오기 전, W는 왜 굳이 우돈타니로 오려고 하는지 물었다. 방콕, 푸켓, 파타야, 치앙마이가 아니라 우돈타니 니처럼 상대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으로 오려 하는지.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태국의 본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으로 먹고 사는 도시 말고, 외국인이 흔치 않고 주민의 대부분이 영어를 못하는 곳. 그들의 일상이 관광객이 아닌 그들의 삶에 집중된 곳. 그래서 태국인들의 일상을, 그들의 현재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곳. 그렇지만 안전하고 방콕으로부터 교통 접근성이 좋은 곳. 내 생각에 그런 곳은 태국의 우돈타니이며, 그래서 우돈타니에 가보고 싶었고, 마침 너도 우돈타니에 있으니, 그래서 나는 우돈타니에 간다고 했다.


 #태국인 in 태국 그리고 한국

우돈타니의 농프라작 공원. 이 곳에서 꼭 노을을 보고 싶었다.

 나는 농프라작 공원에서 지는 해를 꼭 보고 싶었다. 호수에 비치는 노을이 멋진 것도 이유지만, 더 큰 이유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삼삼오오 모여 그들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태국 사람들의 일상적인 저녁이 궁금해서였다. 호숫가에 앉아, 러닝하는 사람들, 체조하는 사람들, 기타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곳 농프라작 공원에서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이 사람들의 가족 중에 누군가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혹은 본인이 과거에 한국에서 일했던 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국인 불법체류자 10만명 시대"

 한국과 태국은 무비자로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물론 관광 목적의 체류이기 때문에, 취업해서 소득을 발생시키는 일을 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불법 취업한 태국인 여성들에 대한 단속 장면. 출처: 다음뉴스 (https://news.v.daum.net/v/20180704151745545)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한국인 브로커를 통해 태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하는데, 한 사람당 200만원 가까이 내면 항공권, 옷 등의 것들과 한국 내 취업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한다. 이들이 소개하는 취업자리는 대부분 마사지 업소, 유흥 업소라고 한다. 불법으로 체류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더 시급하고 위험한 문제는 이렇게 들어온 태국인들에 대한 인권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에 나온 사례 중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경우도 있었다.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태국인 여성이었는데, 업주가 아닌 손님으로부터 성행위,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물론 태국인 본인이 돈때문에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본인이 원치 않을 경우, 거절하면 끝이지 않냐고 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런 손님이 불법체류자로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한다고 협박했으며,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흔치 않은 경우이겠으나, 예의주시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는 흔한 경우가 아닌 '흔치 않은' 경우이다. 만약, 99명이 불법 체류만 할 뿐 다른 문제가 없고 1명만 성매매, 폭력, 협박에 노출되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소수라고 해서 방치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1명은 지금 어딘가에서 지옥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 불법 취업도 문제지만 사람의 기본권 보장이 우선이다.



#W의 가족


 농프라작 공원에서의 사색을 뒤로하고, W와 나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야시장으로 향했다. W와 함께 한 시간동안 놀랍고도 감사한 경험을 여러번 했다. 그 중 첫 번째를 이 때 했는데, W의 아버지가 우리를 야시장에 데려다 주려고 오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나의 태국 방문을 W의 온 가족이 알고 있다고 한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지나가는 길에 데려다 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W의 아버지 또한 밝고, 맑은 분이셨다. 전직 군인이었기 때문에 카리스마는 확실했지만 그 안에서 맑고 따듯한 분임을 알 수 있었다.


W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봉지 하나를 건네셨다.
그 안에는 포장된 망고밥이 있었다.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우돈타니로 가는 환승 항공편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공항 내 식당을 두리번 거리다, 예전 태국 여행 때 맛있게 먹었던 망고밥이 생각나 망고밥을 파는 식당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맛이 형편없었다. 망고+연유의 조합인데 이게 맛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W: 어제 먹은 망고밥 별로였다며.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아빠한테 오빠 꼭 사다주라고 했어. 우리 동네에 망고밥 잘하는 집 있거든. 꼭 먹어보래,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 가본 우돈타니에서, 오늘 처음 본 친구에게, 그 부모님께 이런 친철을 받고 나니 말문이 막혔다. 어쩜 이렇게까지 나한테 잘해주는 걸까.

 이 분들의, 이 가족의 삶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밝은 웃음과 맑은 마음으로 조건없는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사람들. 그래서 이 분들의 인상이 그렇게 예뻤나보다 (여행의 끝자락에 그동안의 친절에 대한 내 나름의 감사함을 표했다. 이건 후편에서 등장한다).


W 아버님께서 주신 망고밥



#역시, 야시장


우돈타니 야시장 'UD town'


 W의 아버님 덕분에 편하게 UD town에 도착했다. 이 곳은 규모 면에서는 방콕읠 딸랏롯파이2보다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태국의 야시장을 좋아한다.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예쁜 거리, 낭만적인 버스킹, 활기찬 밤, 시원한 밤공기, 너무 좋다, 완벽하다, 모든 것이.



  

 

여행 내내 함께한 부채. 한국에서 준비해 갔다. 기가 막히게도 마지막날 잃어버렸다. 이번 태국여행의 signature였던 부채.


이보다 더 완벽한 여행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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