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돈타니에 머무는 동안, 매일 비슷한 패턴이었다. 오전은 나혼자 여행, 오후에 W가 퇴근하고 나면 W의 리드에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는 일정. 정처 없이 돌아다녀보기로 하며 길을 나선다.
한국에서는 항상 그랬다. 아침에 학교는 몇 시까지 가야 하고, 병원은 몇 시까지 가야 하고, 하루 일정에 언제나 시간의 deadline이 있었다.
어딜 나서든 목적지가 있었고, 도착 예정 시간이 있고, 여유 시간 몇 분까지 계산해서, 그렇게 생활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혼자 하는 자유여행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마음, 길을 가다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 벤치에 앉아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앉아도 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것도 나를 강제하지 않는다.
자유, 즉흥, 여유. 이보다 더 가벼운 순간이 또 있을까.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던 호텔. 가격도, 직원분들도, 시설도 모두 만족스러웠던 Kavinburi hotel.
#태국의 시장
태국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학교, 새벽 시장, 극장, 야시장, 공원 등을 보고 싶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중, 현지인들만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장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90년대 (80년대는 세상에 없었어서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살던 아파트 근처에 있던 재래시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거의 똑같았다. 거의. 관광객들이 많이들 찾는 흔한 태국의 야시장과는 전혀 1도 비슷하지 않은 곳.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외국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정말 현지인들만 찾는 시장이 분명했다. 외국인들은 한 명도 못 봤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상인들 뿐이었으니까.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하다고 느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비린내와 젖은 바닥. 재래시장에 가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생선이든 육류든 비린내가 참 많이 난다. 그리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온 물들이 바닥을 적시고 있다. 이 시장도 마찬가지. 날이 더워서 그런가 비린내는 매우 강했고 그러면 안되지만, 순간적으로 본의 아니게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배수시설로 보이는 중간중간 뚫려 있는 바닥의 벽돌에서, 비린내에서, 가판대 과일에 앉은 초파리에서, 가끔 등장하는 커다란 들쥐에서, 생닭은 산처럼 싣고 가는 오토바이에서, 어릴 적 가봤던 일상의 재래시장을 다시 기억했다.
#태국식 고기뷔페, 무카타
사진에 보이는 태국식 고기뷔페를 '무카타'라고 한다. 우리나라 삼겹살 구워 먹는 것에서 유래해서 '무양 까올리' (무: 돼지고기, 까올리: 한국)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여부는 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가지고 자기 테이블에 놓인 저 화로에서 굽는 것. 우선 두툼한 비계를 불판에 굴려 기름을 두르고 굽는다. 태국은 각자 먹을 것을 자기가 구워 먹는다. 우리나라처럼 고기 여러 덩이를 올리고 그걸 작게 잘라서 먹기 좋게 상대방 앞에 가져다 두는 문화가 아니라, 본인이 먹을 것을 본인이 구워 본인의 젓가락으로 자기 접시에 옮겨 담아 먹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불판 한가득 고기를 구워 굽는 대로 W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당황하더라. 고맙다고는 하는데, '뭐해?' 하는 모습. 한국에서 나름 고기 잘 굽는 것으로 지인들에게 인정받은 실력이라 실력 좀 뽐내다 당황스러운 상황만 연출했다.
태국식 고기구이, 무카타. 태국어로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다.
#태국의 간식, 로띠
태국에만 있는 간식인지 모르겠지만, 태국을 다녀온 분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본 로띠. 로띠는 밀가루 반죽에 바나나 등 과일을 넣고 구운 음식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 위에 누텔라, 연유 등 달달한 것을 뿌려 먹는다. 진짜 맛있다. 사실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긴 하다. 우돈타니에는 로띠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가 있다. 위치는 농 프락작 공원 인근. 이름은 '꾸 로띠'. 태국어로는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
바나나 로띠. 맛이 기가 막힌다. 이런 간식을 즐기는 태국인들이 부럽다.
# 태국 하면 역시, 팟타이
태국에는 팟타이라는 음식이 있다. 똠 양 꿍, 뿌 팟퐁 카레 등등 유명한 음식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중 팟타이가 단연 1 티어라고 생각한다. 똠 양 꿍은 그 시큼함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고, 뿌 팟퐁 카레는 제대로 된 곳에서 먹으면 좀 비싸다. 2인분에 1200밧, 원화로 4만 5천원 정도에 태국 현지에서 먹은 적이 있다. 그러나 팟타이는 다르다. 대부분 60바트면 사 먹을 수 있는 볶음 국수 요리. 취향에 따라 첨가되는 고기, 새우 등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일단 맛있다. 면발을 무엇으로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면발과 소스, 다른 양념과 볶음 음식 특유의 향이 어우러져 정말 맛있었다. 태국에서 맛집 찾는 법은 인터넷으로 하는 게 아니다. W가 알려주더라, 현지 음식 맛집에서 먹고 싶으면, Grab food (핑크 조끼를 입은 오토바이 기사들, delivery를 뜻한다.) 오토바이 줄지어 있는 곳을 가면 된다고. 우돈타니 센트럴 플라자 앞에 있는 간판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곳으로 W가 안내하였다. 가게 앞은 Grab food 오토바이들로 도로 한 개 차선이 막혀있었다. 역시 맛집은 다르다. 맛이 기가 막힌다. 원래 식탐도 별로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리액션이 크지도 않은 편인데, 먹어본 태국 음식, 태국 음식뿐만 아니라 살면서 먹어본 음식들 중에 반사적으로 큰 리액션이 나온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우돈타니의 대학,
우돈타니 라자밧 대학교
이번 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대학교 탐방. W가 졸업한 학교인 우돈타니 라자밧 대학교는 엄청나게 넓다. 태국 대부분의 대학이 매우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태국의 대학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곳의 특징은 각 단과대학의 건물마다 1층은 오픈형이다. 문이 없고, 뻥 뚫려 있으며, 그 공간에 여러 개의 의자와 책상이 놓여있다. 1인석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그런 책상과 의자. 그런 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탁 트인 공간, 시원한 바람,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을 듯하다. 물론 공부는 잘 안 되겠지만.
교내 가로수가 야자수다. 이런 곳에서 학교생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학부생 시절에 태국 교환학생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태국의 대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흰 셔츠 및 블라우스에 검은 슬랙스 및 스커트. 이 사실을 모를 때는 다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 대학생 때도 교복을 입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뭐 입지' 하는 걱정 안 해도 되고, 모두가 같은 옷을 입으니 소속감도 생기고, 여러모로 편리한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교복을 입기 싫었지만, 이젠 교복을 입는 게 부럽다. PK 실습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매일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셔츠, 타이, 슬랙스, 구두이기 때문이다.
대학교뿐만 아니라 관공서, 학교 등 public한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정복이 따로 있다. 흰색, 베이지색. W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이 정복들을 가지고 있다. 언제 입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물지 않게 입는 것으로 봐서는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입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태국 사람들은 유니폼을 좋아하는 듯.
정글처럼 보이지만 대학교 안에 있는 하천이다. 물이 맑진 않았지만 캠퍼스에 운치 한 스푼 더한 느낌.
#태국 속 작은 중국,
Thai-Chinese cultural center
사실 이 곳의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다. 태국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지도 모르겠고, 우돈타니는 더욱 그렇고, 방문한 이유는 사실 한 가지. 이 곳 뒤쪽에 있는 호수 위 정자에서 보는 노을이 멋지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연못도 있고, 작은 정원도 있어서 둘러보기에 좋았다. 우돈타니를 방문한다면 한번 쯤 가볼 만한 곳.
#우돈타니의 야시장, UD TOWN
태국 사람들에게 야시장은 삶의 일부분이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쇼핑을 하러, 데이트하러, 친구들과 어울리려 많은 이들이 야시장을 찾는다. 꼭 관광객을 위한 그런 곳이 아니다. 물론 방콕, 파타야 등은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한 음식 및 물건들이 많지만, 우돈타니는 조금 달랐다. 방콕에서는 그 흔한 코끼리 바지를 여기서는 찾지 못했으니까.
우돈타니의 야시장으로 유명한 UD town은 우돈타니 역 앞에 있으며, 걸어서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잘 정비된 건물과 조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길거리에 늘어선 야시장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번쯤 와볼 만한 곳이다. 태국인들의 저녁이 어떤지 알 수 있으니까.
#밤에는 언제나 루프탑
우돈타니에서 머물렀던 모든 날, 항상 이 곳 루프탑에서 맥주 아니면 생솜콕 (태국 현지 위스키 생솜 + 콜라)을 마시며 밤바람을 쐬었다. W는 항상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해가 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한적함이 좋았다.
건물이 높지 않아 옆 건물 옥상을 마주보는 정도. 그래도, 이 곳에서는 유일하다 싶은 루프탑.
#태국 이싼 지방의
극장식 나이트클럽, 따완댕
태국 여행을 몇 번 다녀보신 분들은 안다. 따완댕, 이싼(태국 북쪽 지방)의 그 특유의 음악과 문화를 가진 클럽. 우돈타니의 따완댕밖에 안 가봤지만 검색해본 바로는 이싼지방과 이싼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있는 태국의 도시들에는 대부분 따완댕이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여기는 나이 제한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대별로 가는 클럽, 나이트가 나뉘어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갓 성인된 것으로 보이는 20대부터, 중년까지 모두 모여있었다. 노래 또한 젊은 층을 위한 EDM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유명한 태국의 가요도 나오고, 이싼 스타일의 음악도 나오고, 공연하는 밴드의 노래도 나오고, 다양했다. 또한 유행하는 춤같은 것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춤을 추며 노는 것도 아니다. 자유분방하게, 자기 흥대로, 놀고 싶은 대로 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의 밤문화는 이렇게 자유롭다는 것, 태국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Sangsom & coke
#우돈타니의 또 다른 클럽,
Yellow bird & Pheonix
따완댕과는 다른 분위기의 클럽. Pheonix는 우리가 흔히 아는 클럽의 모습이다. EDM과 Dj, 네온사인과 어두운 조명. Yellow bird는 따완댕과 비슷하지만 좀 더 젊은 층을 위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여기는 음식도 팔고, 젊은 따완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웨이터는 계속해서 내게 메뚜기인지 뭔지 모를 곤충 튀긴 걸 맛보라고 권하는데, 거절에도 불구하고 클럽을 나올 때까지 권했지만 끝까지 먹지 않았다. 이들의 클럽은 따완댕만큼 인상 깊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곳에 오는 젊은 남녀의 목적의식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더 좋은 인상은 아닌 기억.
우돈타니 여행기는 여기까지. 아마도 정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한다. 혼자 한 여행은 여기서 끝, 이후의 여행기는 고향친구들과 함께한 방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