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육아는 이전 세대의 물질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정서적인 영역에 조금 더 초점을 둔다. 최근 들어 "금쪽같은 내 새끼",,, 아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최근도 아니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시절로 돌아가기만 해도 아이의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생활의 배경에는 가정, 유독 부모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부분에서 나쁘게 말하면 부모 탓, 좋게 말하면 부모도 사람인지라 남인 자식을 잘 모르는 부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더깊이 들어가다 보면 부모의 기저에 깔려있는 내면 아이와 현실에 존재하는 아이와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유독 작년에 많이 접했던 심리상담사들과 이야기를 해보아도 어른이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결국은 그 사람의 과거로 돌아가서 본인도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일으켜 그 안에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내면 아이는 작동하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이성과 윤리, 도덕이 서로를 극으로 몰아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조금 삐뚤어진 내면 아이를 가지고 있는 어른은 그 가정에서 극히 가까운 관계를 맺을 때 더 크게 드러나고, 특히나 내면 아이와 동갑인 진짜 아이를 대할 때에는 조금 더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약자에게는 본성이 더 강하게 나온다고 한다.)
육아가 괴롭다는 것이, 나도 모르는 나의 내면 아이를 자꾸 불러일으키는 현실세계의 이 아이는 천둥벌거숭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잠시 주기보다는 더더욱 빨리 네 문제를 해결하고 나에게 집중하라는 최고 상전이라는 점이다. 더더욱 힘든 부분은, 나 혼자 내면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남편 또한 나와 다른 과거를 가진 내면 아이가 있어서 이 현실 아이가 쌍방향으로 엄마아빠의 과거 아이들을 불러올 때면 부부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면서도 아주 깊은 것.
오늘은 그저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으나, 조금 깊게 살펴보자면 이렇다.
남편은 가족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어쩌면 더 나아가서 그러므로 인해 본인이 창피를 당하는 일을 극적으로 싫어한다. 육아 서적에 예시로 많이 나오는 그 상황: 사람들이 많을 때 아이에게 더욱 감정적으로 훈육을 하기 굉장히 쉬워지는 사람이다. 식당에서 조금만 떼를 쓰거나 시끄럽게 하면 바로 혼내는 아빠로 돌변한다. 오늘도 하필이면 아이가 배고픈 시간대에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빠가 아이의 음료수를 쏟았다. 아이는 남 눈치 따위 보지도 않고 시끄럽게 울어댔고 그래도 최근에 육아지식을 쌓던 아빠는 처음엔 아빠가 미안해를 시전 하다 곧이어 그만 울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조금 진정됐을까, 입 주변을 닦아주다가 한번 더 쏟았다.
내가 배운 바로는 일단 아빠가 잘못하긴 했다. 아이는 속상했을 뿐이다. 정 식당에서 소리 지르는 게 민망했으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진정시켰으면 될 일은 아까 이미 감정이 한번 털린 아빠는 본인이 또다시 쏟은 음료수에 다시 우는 아이에게 무서운 인상으로 아버님과 똑같은 말투와 악센트로 "이 씨- (그만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오묘하게 우리에게만 들리는 주파수로 말했다.
어른들끼리의 이런 상황이라면 남편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남편의 성격이었으면 남의 음료수를 쏟았으면 상대방이 소리 지르며 화를 낸다 해도 끝까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을 것이다. 두 번째 쏟았을 때는 적반하장이 아닌, 진짜 미안하다며 하나 사드리겠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체면을 심하게 중요시 생각하는 어머님과 "씨-"를 자주 하시는 아버님을 가끔 마주하고는 한다. 유아기의 무의식까지 가기도 전에 현실에 계시는 그가 싫어하는 부분까지 닮아버린 그의 부모님이 끼친 영향을 내 눈앞에서 언제나 마주한다.
남편만 부모의 영향을 받은 자식이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어쩌면 방임이 있다. "남들도 나처럼 이해해주겠지"라며 주관적인 잣대로 이 정도는 괜찮다는 자기 위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들은 오늘도 식당에 이것저것을 만져보며 창문에 붙어있던 방한지 한쪽을 건드리다가 떼어졌다. 바로 제제가 들어가는 부모가 있는 반면, 나는 이미 떼어진 거, 추후에 사과시키고 붙어놓자고 아들에게 훈육스런말은 하지만 계속 만지는걸 강하게 말리는 편은 아니다. 식당 주인이 괜찮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른 손님들이 봤을 때는 맘충ㅜㅜ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가끔은 안전에 대해 조금 민감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애들은 다치면서 큰 거라고 "너무 싸고돌지 말자."라는 주의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엄마들이 봤을 때는 위험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가끔은 맨발로 놀이터를 다니게 한다던가, 차 본네트 위에 와이퍼를 가지고 놀게 한다던가 정말 "위험"하여 크게 다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먼저 "안돼"를 절대 외치지 않는다. 맨발로 다니는 것은 뉴질랜드나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자주 그런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엄마들이 기겁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뭐 재수 없게 발에 유리조각이 박힐 수 있긴 하다.
알지만 잘 안된다. 우리 엄마가 나를 자유롭게 키웠다. 그 자유스러운 것이 너무 좋았다. 내가 보기에도 엄마 이건 좀 민폐인 것 같은데라고 하는 상황도 사실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 주변에 내가 하는 행동을 아니꼽게 보거나 혼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쩌면 엄마가 상황을 대강 살피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을 수도 있다. 엄마는 안되면 혼내지 않고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자유로운 대신 남편처럼 규칙이 목숨이고 남들이 나쁜 짓 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자유로움은 그들에게는 민폐였을 수도 있다.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는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텐데 엄마와 나의 육아에는 남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육아는 없다.
(아무래도 내가 쓴 거라 내 편을 많이 든 듯한 뉘앙스....)
남편이 괜히 엄하게 아이를 다룰 때에는 내 안에서 우리 아빠의 엄한 교육이 싫었던 나의 내면 아이가 튀어나와 남편을 제지한다. 제지받은 남편의 내면 아이는 컨트롤 경향이 강한 어머님 밑에서 이래라저래라 듣기 싫었던 아이 었던지라 중간의 나의 개입을 받는 순간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이렇게 부모가 현실의 아이를 바라보며 나의 내면 아이를 같이 끌어올릴 때면 참 평범한 일상이었는데도 감정적으로는 진이 다 빠질 때도 있다.
망아지 같은 와이프가 적당히 일반 남자를 만났으면 모를까 또 하필 유난히 극 FM인 남편과 만나서 아이를 사이에 두고 극과 극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결혼을 할 때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중간에 아이가 생기니 각기 방향에서 대치를 하며 육아를 한다.
분명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나는 꽤 스스로 많이 성숙했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철부지 같긴 해도 사람 관계에서 마찰을 일으킨다던가 사회적으로 문제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관계에서도 꽤나 성숙한 대응을 잘하던 사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여러 가지 나의 모습을 마주하며,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영향을 받을 아이 생각에 나를 더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피하지 않고 스스로의 무의식과 과거,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를 끝없이 훑다 보니 어느새 난 다시 과거의 우리 엄마 아빠의 아이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성숙했던 나는 모든 조건이 무난하게 살 정도로 갖추어진 환경의 나이고, 그 환경이 파괴되면 다시 원초적 본능의 한 어린아이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