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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Dec 21. 2022

정서적 이혼

생각 외로 후련하다

나는 오늘 남편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그리고 결혼 7년 차 부부에게 달달한 사랑을 바란 것도 아니었으나,

사랑 마지노선 어디 즈음에 있을 법한 그 어떤 연민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최근에도 목이 쉴 정도로 기침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지만 내 감기 기침소리에 남편은 단 한 번도 괜찮냐며 물어오기보다는 본인의 일이 요새 힘들다며 온갖 인상을 쓰고 생색을 내고 있었다.


서러움도 잠시,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아 졌다.

이미 독일에서 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갈라서고 싶었지만 이제 막 태어난 아이 때문에 하지 못하였다.

아무도 모르고 개발도 덜 된 평택에 막 이사하여 집안에 갇혀 코로나 육아를 혼자 감당하던 그 시절에도 남편의 회사는 바빴고 주말마다 싸우기 바빴다. 내게 그 기간은 지옥이었다. 내가 없어지면 고통이 끝날 것 같은 그런 기간이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잃을 어린 3살짜리가 눈에 밟혀 버티고 버텼던 기간이었다. 그  때에도 지금쯤이면 아이가 아빠를 바꿔채도 늦지는 않은 시기인가 고민했었다. 아무리 그때를 장난으로라도 "좋았다"라고 회상하지 말라고 백번 천 번 말해도 남편은 그때 그 시절 좋았다며 나를 괴롭히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래도 일하고 오는 고생하는 남편이니까,

그래도 기분 좋을 때는 잘 놀아주는 아빠니까,

그래도 나에게 맞춰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사실은 착한 사람일 테니까,

라며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여러 가지로 남편의 본인밖에 담지 못하는 작은 가슴과 그에 반비례하는 그의 거친 언행,

그리고 일일이 말하지 못했던 유독 나의 가족에게만 무례했던 행동들,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피곤한데 본인만 먹구름을 몰고 다니며 세상 짐 혼자 다진 것처럼 모두 앞에서 힘들어하던 것도 남부끄러울 정도로 미성숙한 사춘기 소년 같았고  


그래도 남편이 나를 연애 때의 열정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그 또한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보다는 본인의 열정에 못 이긴 감정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행동들이었지만)

같이 나이 들어가며 형태를 변화하는 사랑의 한 모습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는 생각이 있던 것 같았는데 그 생각이 내게만 있다는 사실을 알자 다른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 어떠한 "우리"를 위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깊게 생각하는 것도 싫어하고,

건강한 대화도 힘들고,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그 성향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제일 크게는 남편으로써 내가 기댈 수 있는 공간이 그의 마음에는 하나도 없다.


회사에 있는 남직원들처럼 엄마의 시어미 노릇에서 톡톡히 와이프를 챙기는 모습은 아니어도 시어머니에게 관대한 만큼만 내게 관대했더라면, 적어도 내 서운한 감정이라도 한번 제대로 읽어줬더라면,

다 같이 힘든 상황에 조금이라도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 가장의 모습처럼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더라면,

아이에게 장난으로라도 험한 말을 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진심으로 들어줬더라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족이 내게 감사한 존재라는 것을 좀 인지하고 있더라면,

나의 우리 가족을 위한 노력은 공허한 메아리라는 것을 내가 조금 더 늦게 알아챘을 텐데.


오늘 그와의 대화를 생각해보자면 어머님과의 지난 통화에서 서운한 것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고자 다가가면 남편은 공격을 받아내는 선수처럼 나를 공격수로 대한다. 위로를 바라며 다가가는 내게 본인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비하하는 내용은 그 어떤 핑계로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우리 남편. "가서 너네 엄마 찌찌나 빨아라."라며 정말 유치한 말이라도 던지고 싶지만.


정작 내가 서러운 건, 예전부터 내가 여러 번 느꼈던 그 감정: 사람 손길이 그리워서 다가간 개를 몽둥이로 쳐내진 느낌이라 그렇다. 나 정말 불쌍하게 다가갔다 얻어맞은 개 같다. 이제 다시는 저 사람에게 위로를 바라며 다가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남편은 내 존재에 있어 감사한 부분도, 나의 삶을 입장 바꿔보아 생각해주는 배려도 없을 것이다. 여태껏 내가 했던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부분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편과 다투고 나서는 부부관계에 관련된 유튜브라도 보며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이혼하고 싶은 이유, 부부가 싸우는 이유, 남편의 심정 등 찾아보곤 했지만 남편은 육아 관련하여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콘텐츠를 찾는 것 외에 남을 이해하려고 찾아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본인의 힐링을 위해 싸움 영화나 고양이 유튜브나 틀어볼 뿐,,,


이렇게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남편과의 다툼이 있고 나는 눈시울이 붉어져도 아이에게는 거짓 웃음을 보이며 씻기고 입히고 재우러 간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그런 날에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내 기분이 풀리는 정도에 따라 한 두 마디 늘려가며 말을 건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누워있다.


내가 외모를 봤나, 집안을 봤나, 능력을 봤나, 재력을 봤나, 그 아무것도 안 보고 남편만 보고 결혼했는데 그 사람 하나 보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혼을 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기독교인인데, 이혼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다는 부분과 그리고 아이였다. 법적인 이혼은 배경을 너무 크게 흔드는 것 같아 마음과 경제적인 부분에서만 갈라서기로 했다. 경제가 얽혀있으니 왠지 더 함께 사는 것 같아 이제는 싫었다. 남편이 그렇게 원하던 대로 공동으로 나가는 비용만 배분하고 더 많이 벌던 적게 벌던 본인이 번 부분은 본인에게 주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비참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마음이 개운해졌다.


오히려 이전에는 억울했던 부분이었던; 나는 우리의 아이를 낳은 덕에 경력도 끊겨, 덕분에 수입도 끊겼었고, 다시 취직해도 육아기간을 쳐주지 않는 급여에,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남편을 따라 일단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또 집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더 힘든데 내가 더 많이 받는 게 맞지라는 생각 등은 오히려 하나도 들지 않았다. 갈라설 때는 오히려 대인배가 되는 이상한 심리가 신기했지만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내일 남편에게 마음과 함께 경제적으로 갈라서자고 이야기할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개운한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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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에 이혼글을 찾아보다 발견한 댓글에 나의 전반적인 상황을 너무 잘 위로해준 글이 있었다.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는 나 자신의 밑바닥을 나 스스로가 마주한다는데 있어요. 좋은 사람을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주지만, 나와 맞지 않거나 좋지 않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나의 추악한 모습을 자꾸 꺼내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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