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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ul 17. 2019

한쿡사람입니다.  

우리 제발 이기적이지 맙시다.

벌써 2달 반 뒤면 한국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독일이니 한국이니 비교하기에는 "이제 막 외쿡에서 10년 살다가 한쿡들어왔서욥!" 카드를 쓰기에 나는 너무 한국인이다. 유년 때부터 나가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저 딱 인생의 3분의 1만 밖에서 놀다 집으로 다시 들어온 사람이다.


하지만 약 20년을 학생으로, 누군가의 보호 속에서 자라온 그 기간보다 인생을 자기 주체적으로 산 10년간의 세월은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영향력 비중으로 치자면 그에 해당하는 년수를 뛰어넘어버리는 것 같다. 하필 그 기간을 어느 다른 문화 속에서 살다온 배경은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나의 사상, 환경, 생각의 체계라던지,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환경에 변화시켜왔던 그 10년은 어쩌면 내가 나를 만든 기간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한다고 해서 딱히 거창한 비교점이나 느낀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소소해서 남들에게도 너무 흔한 일상들인데, 그저 개인적으로 정리를 위와 같이 한 것뿐이다.


외국계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 가끔 팀원들과 식사시간에 외국기업들의 업무시스템, 외국인의 업무성향 등을 평가하는 자리에 같이 있곤 했다. 한국 직원들은 굉장히 답답해하며 말한다. "아니, 퇴근시간이라고 업무처리 마저 안 해주고 그냥 퇴근하더라니깐요?", "제일 어이없던 게, 오늘 일하기 너무 싫다 그러면서 휴가 쓰더라고요!" 등등 업무에 관해서는 개인 카톡이고 주말이고 개인 공간의 침해를 인정해주는 직원들에게는 답답할만했다. 물론 책임감이 강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 강한 책임감을 버거워하듯 서양에서는 책임회피를 하려는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일학교에서 아시아 회사 문화, 비즈니스 방법 등에 대해 설명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교수는 일본과 중국,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이 느낀 점을 설명했었는데 명함을 받는 방법이라던지, 체면에 관해서 비이성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 회식과 야근 문화 등을 대표로 꼽았다. 강의를 하는 교수는 꽤나 흥미롭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학생들과 그 자리에 참석한 일반인들은 조금의 흥미, 조금의 의아함, 조금의 비웃음 등 많고 복잡한 반응을 내놓았던 것 같다.


두 문화 중 어느 한 문화가 잘되었고 잘못되었고는 없다. 문화의 차이이고 경제의 발달에 따라 성장배경이 다른 것이고, 국민성이 다른 것이다.  크게 보면 집단을 중요시하는 문화와 개인을 중요시하는 문화의 차이일 뿐.


하지만 바로 이 부분! 집단과 개인이라고 치부하기에 한국에 분명히 잘못 들어온 개인주의 사상이 존재하는 것을 최근 들어 여러 장소에서 많이 보았다. 집단주의인데 필요한 부분에서는 그 사상이 부재하고, 개인주의인데 뭔가 변형되어 이상하게 장착된 그 문화, 그 광경이 결국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처음은 엘리베이터 앞에서였다. 한국에서는 에스컬레이터에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 없다고 하길래 할 수 없이 고층과 저층을 오르내리느라 오래 걸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유모차를 끈 부모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동성 강한 유모차 less 성인들이 앞다투어 타는 것 아닌가.


기가 막혔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그렇게 엘리베이터 3대를 놓쳤다.


유모차야 신체 건장 한 엄마 아빠들이 같이 이동하니까 그렇다 치고 휠체어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그들의 사상 속은 정말 "내가 먼저"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먼저 발 빠르게 본인의 몸뚱이라 먼저 엘리베이터 안쪽에 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열림 버튼을 눌러주며 "어머 아기가 너무 이뻐요"라고 입을 떼기 시작했다. 무 해맑은 그 표정에는 나의 행동이 다른이에게 언짢음을 안겨주는지에 대한 센서자체가 없는것이 분명했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밖에서 또 언제쯤 내려올지 모르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다른 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모차가 지겨워욧!


더 신기한 것은, 그 들도 이전에는 아기를 가진 부모였을 것 아닌가. 저번 산책길에 빠른 속도로 나와 내 아기가 탄 유모차를 거의 치듯이 스쳐 지나가던 그 차 운전도 뒷좌석에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손짓조차 없이 빠르게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개인의 자유는 남을 배려하지 못하면 이기주의로 변한다. 유럽 같은 서구 문화는 개인주의이지만 사회주의 경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개인주의가 잘 지켜진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속에서 나만을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상황이 되면 집단적으로 항의하고 변화시키는 부분에는 강하지만, 그 상황만 벗어나면 남의 일이며 내가 전에 겪었던 일조차 귀찮은 문제로 떨어져 나가 버린다. 다른 예를 든다면 내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사람이 먼저고, 운전할 때는 차가 먼저인 태도가 대부분이다.


이게 전반적으로 "나밖에 모르는 것" 아닌가.?


확실히 정리하자. 법적으로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먼저이다. 치면 본인 손해인걸 알면서도 차가 인간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갑질을 하지 말자. 본인도 차 밖으로 나와서는 보도를 건너는 인간이니까.


상식이나 배려를 설명해줘야 하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일인지 최근에서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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