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불렀던 개똥벌레 노래가 다시 부르다 보니 이 작가의 삶이 얼마나 애달팠는지
고개를 숙이게 되는 가사. 그냥 내 무의식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떠올린 노래이다.
최근에 너무 답답한 마음에 심리 상담소를 찾았는데 20대의 괴팍했던 성격과는 달리 나는 억압형이라는 진단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이런 사람의 유형은 방출이 아닌 억압으로 인해 갑자기 뜬금없이 억압된 것이 이상 행동으로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방출형과 억압형이 있는데 방출형 같은 경우는 미친 듯이 여행을 다닌다거나, 주말마다 맛집을 휘젓고 다닌다거나 한다 하시고 억압형은 이렇게 가만히 지내다 이혼으로 끝맺음을 가지거나 뭐 자해를 하거나 하는 스스로의 내면을 죽이는 유형이라고 작은 예시를 주셨다.]
개똥벌레 노래도 아무런 예고 없이 툭. 튀어나왔다. 내 영정사진처럼.
남들이 보면 나는 그렇게 밝고 명랑할 수 없다. 나 또한 나 자신을 속여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회사일이 손에 안 잡혀 급하게 오후 반차를 내고 심리상담소를 찾은 그날, 내 안에 억압되어 있는 이야기들은 한 5% 정도 풀어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가족들 몰래 쓴 반차의 남은 시간 동안 그냥 내 개인을 위한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어 졌고, 그날따라 스스로 좀 단아해 보이고 이뻐 보이는 김에 여권사진에 추가로 프로필사진을 찍기로 했다.
프로필사진이 나오고 화면으로 본 내 모습에 객관적인 시선으로는 내가 어마무시하게 살이 쪘다는 소리 없는 시각적 팩폭을 당했지만 작가님의 화려한 손기술에 다시 나의 주관적인 미를 되찾았다.
사진을 흐뭇하게 보고 액자하나를 받아 집에 가는데 영정사진으로 걸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엥, 왠 난데없이 영정사진. 그러면서 남편에게 "내가 만약에 죽으면 이 사진으로 걸어줘."라고 이야기하는 내가 연상이 되었다. 다음 회차 때 박사님이 그 영정사진이라는 단어를 듣고 많이 마음 아파하셨지만 그때는 또 아이와 함께 간 날이라 내가 기분이 들떠 내 무의식에 집중을 할 수 없어 다음 회차 때 더 이야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는 무의식일 것이라고 알려주시긴 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혼일까? 모든 시점은 결혼 시점을 가리키며 "그래 너의 가족을 탓해."라고 손짓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은 또 나였다.
친구나 지인 등 사회적 관계가 아닌 친밀한 가족 안에서 아직 덜 자란 나의 내면아이가 어떠한 이유로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 분노를 억압하다 보니 내 안이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나의 상태가 그렇다고 박사님이 말했던 것 같다.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니었고, 나는 나를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었다.
인정을 하면 편할 것을 인정도 잘하지 못했다, 어떤 수많은 요소들로 인해.
이 또한 내 모습이 아니었다. 난 나를 잘 알았었고, 인정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180도 뒤집어졌다. 나는 공주님이 아니고 개똥벌레였다.
내가 개똥이었으면 개똥 그대로 살았으면 될 텐데
옆집 공주님이 되고 싶어서 똥 따위는 좋아하지 않는 척,
바닥을 기어 다니지 않고 날아만 다닌 척,
그 고상한 모습을 유지하려 똥도 안 싸고 대장에 쌓아놓다가 병이 나기 일보직전에 의원을 찾았다.
날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는 개똥벌레가 아니고 제일 예쁜 공주님이야"라고 알려준 부모님을 탓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