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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DAK 노닥 Jan 22. 2023

설렘

에 대하여

너를 만나기 100m 전. 이미 가슴이 두근두근 하다. 설레는 감정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마치 예전에 만났던 첫사랑을 만나는 것 같으니...


누가 보면 연애편지인 줄 아는 이 말들은 다 내가 서점에 갈 때마다 하는 말들이다.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문고는 내 찬미의 대상으로, 아마 내가 옛날 고대 그리스 사람 중 한명이었다면 교보문고라는 여신의 존재를 하나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물론 옛날 그리스에는 교보문고가 없었지만).

토끼의 해인 것을 기념하여 교보문고에는 이런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교보문고에 이렇게 열렬하게 빠진 이유는 대략 10년 전이다. 그 당시의 교보문고는 오늘 리메이크된 교보문고랑은 달랐다. CD를 판매하는 공간도 달랐고 조금 더 폐쇠(?)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스타벅스로 변해버린 식당의 자리에서 매번 부모님 손 잡고 갈 때마다 ‘멜로디스’ 라는 퓨전음식점에서 카레향 치킨 라이스를 시켜먹을 때의 그 황홀경을 아직도 추억한다.


무엇보다 교보문고가 나의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유는 바로 천장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 문고의 천장은 거울로 되어 있었다. 오른쪽에는 엄마 손을 잡고 왼쪽은 아빠 손을 잡고 천장을 보면서 걸어가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신세계였다. 부모님이 하지말라 하지말라 했어도 눈치껏 천장을 보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피하는 게임 속에서 마치 나는 1945게임(비행기가 날아다니며 폭탄을 발사하는 게임) 이나 갤러그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오늘날은 조금 더 깔끔해지고 공간도 효율적으로 변모했다. 심지어 식당이었던 자리 옆에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정말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어 지나가면서 여러 체험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팔방미인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교보문고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렇게 설렜던 이유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아마도 설렘은 경험과 기억에 근거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교보문고 말고도 특별히 향수를 일으키는, 걷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길이 있다. 필름을 맡기러 가는 익숙한 길들도 그러하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의 길이 그러하고. 익숙하고 즐거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그 길이 그러하다. 뭔가 즐거운 각인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면 언제 어느 때든 두근거리는 심장이 작동한다.

교보문고가 위치한 광화문.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의 설렘 포인트가 있는 순간은 언제이지 생각해보면, 교보문고 외에는 집에서 요리하기 위해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요리할 때 남들이 내 음식을 맛있다고 평가해주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돈을 쓰며, 힘을 쓰며 먼 거리에 있는 마트에 다녀온다. 도합 1시간이 걸리는 그 여정 속에서 힘든 순간은 한 순간도 없다. 오로지 두근거리기만 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남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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