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북 시리즈 제 2권 제작 과정 #1
에세이북 시리즈의 제 2권은 여행책입니다. 사진보다는 글이 중심이 되는, 바르셀로나와 파리를 열흘 간 여행한 스물아홉 개의 기록을 엮은 책입니다. 이이영 작가의 원고를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똑같은 에펠탑을 보고도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였습니다. 비틀어보고, 돌려보는 그녀의 관점이 살아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입니다.
책이라는 물질이 가지는 그 어떤 느낌. 물리적인 특성을 잘 담아내는 책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더썸띵북의 <something>이라는 단어에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책은 사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지고, 헤어지고, 닳고, 꽂아두고, 언젠가 기억나면 되돌아가서 뽑아들 수 있는. 곁에 있어야 진짜 책인 것 같습니다.
혹자는 언제든지 자신의 저작에 인용할 수 있도록 총알을 준비해두는 차원에서, 혹자는 절판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소장해두는 차원에서 책을 구입한다고 합니다. 저는 다음 책을 만들 때 물성을 참고하기 위해 꼭 소장할 책은 골라서 사둡니다. 표지의 인쇄 방식, 펼치면 작은 포스터가 되는 겉싸개, 본문의 레이아웃, 오버프린트된 인쇄 기법, 드로잉과 활자의 조판 방식, 이런 것들은 작은 디테일까지도 결정적인 순간에 차이를 가져오는 좋은 레퍼런스가 됩니다.
오늘은 여행책 디자인을 위해 참고할 책들을 책장에서 뽑아 들기 시작했습니다. 표지를 위한 책 세 권: <여행, 혹은 여행처럼>,<BA Graphic Design Degree Show 2012>, <무대지시>. 세 권 모두 겉싸개를 펼치면 작은 포스터가 됩니다. 특히 두 번째 책은 전시 도록인데, 겉싸개를 펼치면 각 작품의 썸네일을 모두 모아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응용하여 여행 사진 스물아홉 장을 작게 배열하여 포스터 형태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의 형태를 참고하기 위한 책 세 권: <Wallpaper Cityguide>, <The Unique Room: Hotel Everland>, <COS X SEOUL>. 첫 번째로는 여행책 특유의 카테고리 분류법(전화번호부처럼 플래그를 만드는 방식)을 29개의 꼭지 구분에 차용해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둘째는 여행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숙소, 아침 식사, 배경음악, 음식에 대한 별도의 섹션을 만들면 좋겠다는 점. 셋째는 본문에 사용한 종이의 접지 방식을 참고했습니다. 반으로 접힌 형태의 종이가 책의 배면을 향해 있는 제본 방식인데, 접힌 내부에 숨겨진 인쇄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조판을 위한 책 세 권: <Double Page>, <나의 사적인 도시>, <리뷰, 7명의 예술가들>. 첫 번째 책은 두 가지 스폿 컬러를 사용하여 더블 페이지를 효과적으로 대조하여 보여주는 방식이 참고할 만 합니다. 두 번째 책은 박상미 작가의 개인적인 일기장 같은 글의 모음이지만 작가 특유의 예술적 배경지식을 본문 내부에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레이아웃 한 조판 방식이 재미있어서 참고하고자 합니다. 이이영 작가 역시 미술작품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기 때문에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책은 여백을 최소화하고 지면을 자유분방하게 사용하여 조판한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프로모션을 위한 참고용 책 세 권: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 <Next Door Gallery Notebook>,<In the Wilds>. 이번에 만드는 여행책은 글이 중심이 되는 여행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나도 사진 이외의 무언가를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성공이지요. 그래서 책과 함께 노트를 세트로 제작하여 프로모션 할 계획입니다. 아직 작가님께는 깜짝 비밀이지만요. (이 글을 보시지는 않겠죠?) 첫 두 책이 이를 위한 참고가 될 만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책은 이 책에 어떤 색깔을 입힐까, 비주얼의 특징을 부여하기 위해 손글씨와 드로잉을 적용해보려고 참고한 책입니다.
이 소중한 레퍼런스들이 제 책장에 꽂혀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너무 고마운 거 있죠. 여행 가서 책 쇼핑 잔뜩 하고 가방 무게 때문에 고생할 때는 이게 웬 고생인가 싶다가도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다짐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 역시 책은 사서 봐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