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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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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빛윤 Dec 21. 2022

소나기 같은 불행

두 여자

달그락, 달그락.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자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눈을 비비며 어기적 어기적 일어난다.

부엌에는 엄마가 끓인 찌개가 보글보글,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 고소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자기 몸을 돌돌 말고 있는 계란말이까지. 능수능란하게 준비가 되어간다.

약 1시간 거리에서 근무하시는 아빠가 매주 금요일 밤 집에 오신다.

따뜻한 아침 식사를 위해서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하셨으리라.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여전히 코를 드르렁 골며 자고 있는 남편과 무엇을 먹을까 냉장고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한다. 

'빵,커피' 그래! 아침엔 이거지!

차가운 냉동실에서 빵을 꺼내 데운다. 위이이이이잉~ 시끄럽게 돌아가는 커피 머신에서는 달콤쌉싸름한 커피향이 퍼진다.

"자기야~ 아침 먹자!" 머리에 새가 알을 낳아도 될 듯한 모습을 하고는 느릿 느릿 걸어온다.

식탁에 앉는 순간, 뒤통수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식모야?! 아침에 일어나서 실컷 밥해놨더니."

"이제 마음대로 살아라.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고!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듯 보이는 엄마가 끼고있던 고무장갑을 매섭게 던지며 방으로 쿵쾅 들어가신다. "쾅!"


'어, 이게 뭐지..' 머리에 쥐가 내렸다. 새하얗다. 차갑다.

영문을 모르겠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 두 눈이 동그래진 채로 밥을, 아니 빵을 입에 우겨넣는다.

단체 벌 받는 교실처럼 우리 집 식구들이 서로 눈치만 본다. 

'좀전에 아침 식사 때문인가? 아침에 늘 각자 챙겨먹었던 것 같은데, 왜, 어째서, 뭐 때문에.'

머리속에 가득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어 지는 그 찰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내가 아침에 빵 먹어서 그런거야?" 납득할 수 없지만 일단 확인을 위해 물어본다.

"그래! 너는 내가 지금 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줄 아니?"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힌 채 돌아누우며 말씀하신다.

"아침에 서로 먹고싶은 데로 각자 챙겨 먹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한번 더 이야기하지만 차가운 침묵만 돌아온다.


방을 나왔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열 번, 스무 번을 생각해 봐도 그렇게 노여워 할 일인가 싶었다. 그간 감정이 쌓였던 것일까. 


엄마 방문은 하루종일 굳게 닫힌 채 다음날이 되었다. 식사도 거르시고, 대화도 없다. 나만큼 눈치 보고 계시는 아빠만 그 옆에서 가만히 앉아 계실 뿐. 

이틀 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 상황. 더 이상의 모른척, 나의 이해, 납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이들면 밥심이라는데 끼니도 거르면 정말 더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스르륵 방문을 열었다. "엄마, 식사하러 나오세요. 아무것도 안드시면 큰일나요."

"그리고, 아침 만든거 우리 먹으라고 하는 줄 몰랐어. 아침엔 아빠 드시라고 만든 줄 알았지."

"..."

"어서 나와요."

시간이 필요한 일인가보다. 방문을 닫고 나왔다.


아빠의 다급한 쇳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진다. "야야야야~ 이리 좀 와봐라. 빨리."

달려간 방 안에는 갱년기 불면증으로 처방받아 드시던 수면제 통이 열려 있었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있는 힘껏 손가락을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내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엄마 치아가 부러지거나.

부러진 것 없이, 몇 안되는 알약이 투툭. 떨어졌다.

천만 다행으로 몇 알 남지 않은 약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으셨고, 옆에서 TV 보시던 아빠가 다급히 부르신 것이었다.


그 뒤로 약 20시간 넘게 주무셨다.


나는 안다.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그 날의 그 행동은 엄마의 퍼포먼스였다는 것을.

자주 드시던 약이었고,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고 계셨겠지. 

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식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셔서 그렇게 하셨을까.

그렇게까지 하셔서 나에게 바라는 건 무엇이었을까. 

많은 의문만 남긴 채 아무것도 모르는 시간은 성실하게 흐르고, 겉으로 보이는 우리 관계는 회복되어 갔다. 

평소 무뚝뚝하시던 아빠는 다정함도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셨다. 


이보다 더 안맞는 모녀가 있을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린 두 모녀는 진짜 마음을 감춘 채 뱅뱅 겉돌며 오늘도 한 집에서 인사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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