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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엄마 Feb 22. 2017

엄마의 방을 찾아서

<보통엄마> Vol 1. '엄마의 공간'을 열며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의 방이 생겼다. 엄마 아빠와 방을 함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린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처음으로 침대란 것도 생겼다. 바닥에서 구르며 자던 습관 때문에 한동안은 자다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일주일 쯤 지나자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나의 방이 있다는 사실도 더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차례 이사를 더 하면서도 나는 계속 혼자 방을 썼다. 사춘기가 되면서는 방에 엄마 아빠가 모르는 비밀이 늘어났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누군가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기분이 나빴고, 왜 사생활을 지켜주지 않냐며 화를 냈다. 


머리가 크면서 물건도 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로 책장을 채우고, 서랍에는 영화나 공연 티켓이 쌓였다. 한창 빠져 있던 아이돌 그룹의 음반과 사진, 브로마이드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만으로 서랍 하나가 가득찼다. 그때부터는 엄마에게 내가 없을 때는 방을 청소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뭔가를 버릴까 불안해서였다. 


대학에 들어온 뒤에는 자취방에서 살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내 공간이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며 나는 더 많은 물건을 샀다. 같은 방에서 5년을 살았더니, 작은 컵 하나도 더 놓기 힘들 정도로 포화상태가 됐다. 그런데도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은 늘었다. 바닥이 좁아서 늘 침대에서 밥 먹는 게 싫었고, 침실과 주방이 구분되지 않아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수 없는 게 불만이었다. 


한 달에 45만원이나 내면서 이렇게 좁은 방에 살아야 하냐고 불평하면 엄마 아빠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아빠는 타지에서 홀로 좁은 방에 사는 딸을 불쌍하게 여겼다. 엄마는, 좁은 방이더라도 나처럼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한 달에 45만원이나 내면서 이렇게 좁은 방에 살아야 하냐고 엄마 아빠에게 불평하면, 두 사람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아빠는 타지에서 홀로 좁은 방에 사는 딸을 불쌍하게 여겼다. 엄마는 달랐다. 좁은 방이더라도 나처럼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이사를 많이 하면서도 엄마 공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집을 옮길 때면 각자의 방을 어디로 할 건지를 두고 동생과 싸우곤 했는데, 엄마 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도 해보지 못했다. 안방이 있기는 했지만, 엄연히 말해 엄마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우리 집은 늘 좁았던 지라 필요에 따라 안방이 거실 역할을 하기도 해서 더 그랬다. 


무엇보다 엄마가 혼자 있을 틈을 주지를 않았다. 엄마와 아빠 모두 바깥 일을 했지만, 때 맞춰 밥상을 차렸다 치우고,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하는 쪽은 늘 엄마였다. 엄마는 자기가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때도 누군가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집에 있었다. 그래서 아빠처럼 쉬는 날 축구를 하러 가거나, 작업실에서 가구를 만드는 취미를 가지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 모두 바깥 일을 했지만, 때 맞춰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하는 쪽은 늘 엄마였다. 엄마는 자기가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때도 누군가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집에 있었다.

집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에게, 자기 공간 하나가 없었다. 엄마를 뺀 나머지 사람은 거실 외에 자기 공간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것이 비단 나의 엄마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묻고 싶다. 아이의 학교나 남편의 직장을 생각하지 않고 집을 구한다면 말이다. 내가 어떤 작가의 책을 사고, 어떤 감독의 포스터를 벽에다 붙일지 고민하는 것처럼 엄마도 그럴까. 너무 오랫동안 누구도 물어보지 않아서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보통엄마>는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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