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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엄마 Mar 06. 2017

엄마는 일터에 산다

특별히 이상하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내 부모의 하나뿐인 자식인 나는 방이 두 개인 집에선 하나를 차지했고 세 개인 집에선 두 개를 차지했다. 내 의사는 아니었다. 자녀의 공부방과 침실을 꼭 분리하고 싶다는 것. 그건 배움에 갈증이 많아 여전히 무언갈 배우고 공부하기를 쉬지 않는 내 엄마의 오랜 꿈이자 어쩌면 욕심이었다. 따져보면 공부에 취미가 있기는 무려 석사까지 한 나보다 엄마가 더 그랬다. 지금도 엄마는 거실의 낮은 탁자에서 낮에도, 저녁에도 무언갈 계속 공부한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공부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질 못 했다.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잘 꾸며진 책상과 책장이 있는 방을 두고도 독서실을 거쳐 대학 도서관으로, 대학 도서관을 거쳐 카페로 나다니곤 했다.


집을 구하는 것부터 살아내는 것까지 무엇 하나 쉽지 않단 걸 알면서도 독립을 염원한 건 역설적이게도 내 방을 굳이 두 개씩이나 만들고 싶어한 엄마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그 공간을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안의 해괴한 전작주의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좋아하는 뮤지션의 앨범을 방에 전시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갈 전시하거나 모아두기만 하면, 엄마는 그걸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실제로 버리려고 했다. 내 방에 그것도 못 놓아두냐고 하면, 그 물건들이 차지하는 면적을 평수 대비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얼마인지를 읊기도 했고(내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이런 물건을 마음대로 놓을 만큼 여유 있는 집에 살 수 있을 것 같냐고도 했다(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크게 싸울 때는 여기가 내 집이지 네 집이냐고도 했다(정말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나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 아빠는 전혀 멋지지 않은 취향을 가진 대한민국의 슬픈 중년 아저씨라서, 정말 이해 안 가는 물건들을 사오기 일쑤였다. 엄마는 아빠에게도 그 물건들을 모두 버리겠다고 했다. 내 공간에 도저히 그런 것들을 모으거나 들일 수 없다는, 이 공간을 나의 계획대로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로 지켜내겠다는 다짐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내 엄마는 미니멀라이프를 몸소 실천해 오던 사람이고, 나와 내 아빠는 그 흐름에 역행하는 존재였다.) 이 집은 자수성가한 당신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고, 그만큼 곳곳에 애정을 쏟았다. 이렇게 집을 한 구석도 흐트러짐 없이 지켜내려면 얼마나 긴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구석에 관심을 갖고 신경써야하는지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집 안의 모든 공간은 엄마가 있어서 가능한, 엄마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온전히 엄마의 것이었다.


모든 공간이 엄마의 것이라는 말은,
그 어느 곳도 엄마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엄마는 일터에 산다


하지만 모든 공간이 엄마의 것이라는 말은, 그 어느 곳도 엄마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내 아빠는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 늦은 밤에 들어오는 것이 일상인 사람이고, 나 또한 중고등학교 때는 입시를 핑계로, 대학에 들어간 이후엔 집순이 체질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랬다.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을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이 보낸 거다. 그러나 직업이 전업주부인 나의 엄마는, 집의 모든 공간이 그의 것이었기 때문에 한 순간도 가사노동의 일터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어느 구석에서도 일터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흔히 집이라는 곳을 '바깥 일'에서 '도망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드림 하우스’는 결국 집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판타지였던 셈이다. 집의 어떤 공간에서 엄마가 자신만의 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 공간은 언제든 방문을 열고 나온 다른 구성원들과 공유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자 가사노동으로부터 절대 격리될 수 없는 작업장일 뿐이었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분리될 수 없는 잔인한 구조가 ‘집’이다.
보통의 엄마들로 대표되는 전업주부가 그렇게 지내왔다는 걸 차마 깨닫지 못했었다. 놀라운 건 이마저도 엄청난 여권신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이토록 일터에서 노동자가 분리될 수 없는 잔인한 구조가 ‘집’이다. 보통의 엄마들로 대표되는 전업주부가 그렇게 지내왔다는 걸 차마 깨닫지 못했었다. 놀라운 건 이마저도 엄청난 여권신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내 부모가 내 나이였던 시대만 살펴봐도, 부엌은 아예 집 밖에 있거나 생활 공간보다 구조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하곤 했다. 좌식 생활공간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위해 무려 밥상을 턱 밑까지 옮겨다주기도 했고, 사랑채라는 남성만의 전유 공간이 있었으며 윗목과 아랫목을 구분해 여성을 내쫓기도 했다1). 그런 배경에서 부엌이 ‘시스템화’되면서 집안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여성이 원하는 부엌이 없는 집은 사랑받을 수 없다고 광고한다. (심지어 그걸 고려해서 식생활가전도 남자 배우가 광고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 관점에선 분명 천지가 개벽한 건 맞다.


실제로도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할 때 건축주가 가장 고려하는 구성원은 ‘주부’다. 건설사 대표 김현식 씨는 “평면 계획을 할 때 주부의 동선에 따라서 각 실의 배치가 주로 결정된다”며 “이는 ‘공간’보다는 청소나 빨래 등 가족을 위한 노동에 가장 효율적인 노동 구성과 ‘효율’을 고려한 결과로, 주체적인 존재로서 누군가의 공간이 아니라 주부의 노동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부엌과 같은 공간은 배수 배관과 급수가 집중되는 부분이다 보니, 건축주에게 신경써달라고 요구하면 대개 여성들이 그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를 위한 잉여 공간 'She shed'


그런데 이렇게 ‘엄마’만의 공간이 없는 게 비단 우리의 문제만은 아닌가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주거공간 내 남성만의 공간을 뜻하는 ‘Man cave’에 상응하는 여성만의 공간, ‘She shed’ 바람을 소개했다2). 가정 내에서 공용 식탁을 차지하기 위한 유구한 전쟁 끝에, 일부 여성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이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요가를 하고, 독서모임을 열기도 한다. 남편이 자전거를 보관하려는 걸 적극적으로 막기도 하고, 공용 공간에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인테리어를 저지르기도 한다. 남편과 세 아이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공간을 꾸민 에이미 씨는 “집 안에 있으면 누군가는 꼭 엄마를 찾곤 한다”며 'She shed’를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사례도 다양하다. 샹들리에와 비스트로 테이블로 꾸며진 파리지앵 테마의 공간, 노란색(무려 '선샤인-옐로우')으로 칠해진 빅토리안 스타일의 공간. 보라색 안락의자에 분홍색 1인용 침대도 있다. 이 공간에서는 아내도, 엄마도 아닌 온전한 본인으로 존재할 수 있을테다.


물론 이런 경우는 가족만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된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다. 미국에서도 대도시에선 어림 없을 일이고, 아파트가 전체 주거의 60%를, 그 중에선 방 두 세 개 짜리 33평형이 25%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꿈도 못 꿀 일이다. 실제로 주택을 직접 짓는 경우에도 45평 미만이면 각 구성원에게 돌아갈 공간이 모두 나오기 어렵다. 개성 있는 집을 건축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건축가 이성걸 씨는 “60평이 넘어가야 비로소 개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60평이 넘는 주택의 경우에도 엄마의 공간이 지어진 경우는 아직까진 드물다. 이 씨는 종교를 가진 경우 기도방을 꾸민 경우가 몇 번 있었고, 명상을 위한 방을 만든 경우 정도가 특이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남편에 치우친 경제력’으로 분석했다. “60평대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경우 우리 부모 세대에서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해온 경우가 많고, 주로 남성이 경제활동을 담당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남는 공간에 서재나 오디오 룸, 운동 공간 등을 만들 만한 ‘아버지의 취향’은 사회 활동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고, 재력이 축적된 이후에 이를 공간에서 구현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서재처럼 보이지만 실제 쓰임은 공용 공간인 경우도 많다고도 했다. 일리있는 설명이다3).



엄마의 공간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


그러니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소개한 사례같은 ‘She shed’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사회적 상황엔 요원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일부 유사한 공간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이성걸 씨는 최근 한 신축 아파트의 평면도에서 과거 다용도실이었던 부엌 옆 공간을 주부의 개인 작업 공간으로 구분한 경우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일부 30대 초중반의 젊은 전업주부들의 경우, 아이들을 키우면서 재봉틀 등의 취미활동을 위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여전히 가사 노동의 일환으로 활용이 국한되는 부분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위해 공간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은 분명 긍정적이다4). 김현식 씨는 “훗날 국내에서도 페미니즘 의식이 성숙해지고 노동환경이 좋아져 가족 구성원들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가족이 충분히 함께하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가지 요인 만으로 엄마의 공간이 부족한 이유를 분석하거나 평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문제가 그만큼 복잡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엄마의 공간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몇 가지 요인만으로 엄마의 공간이 부족한 이유를 분석하거나 평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문제가 그만큼 복잡해서다. 주부의 가사 노동에 대한 절하된 인식, 쉽게 지어 많은 거주자를 수용할 수 있으며 개별 공간을 구성하기 어려운 (건설적으로) 편의적인 아파트의 양산, 우리 부모 세대에 아버지에게 치우쳤던 경제력 등 여러 요소의 복합적인 산물이 바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집의 형태여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엄마의 공간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방문을 닫고 제 할 일을 하다가는 필요할 때만 문을 열고 엄마를 찾기 때문이고, “감정적으로 지친 많은 엄마들에게도 도저히 하기 싫은 일, 아이, 집 문제, 배우자와의 관계, 부채 등에서 벗어날 공간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5) 이다.


“엄마는 왜 엄마 방 만들 생각을 안 했어? 우리 집 방도 남는데.”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줄도 모르는 내 엄마에게 무심하게 물었다. 내 엄마는 그게 왜 궁금하냐더니 그냥 꿈이었다고 역시 무심하게 답했다. 문득, 두 번째 이사하던 집에 내 방에 꼭 맞게 맞춤 책장과 책상을 짰던 당신이, 이번 집으로 이사할 때도 가장 먼저 책상과 책장부터 골랐고 다른 가구는 하나도 새로 들이지 않았던 당신이 떠올랐다. 지금은 나보다 엄마가 공부 더 많이 하니까 엄마가 책상 써, 하자 이내 눈도 나쁜데 무슨 공부냐고도 했다. 너를 키우느라 일을 그만뒀으니 그렇지,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도 한 방은 자기 차지였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렇지만 나는 잘 알고있다. 눈 핑계로 책상은 내게 미루는 당신이 거실 TV 앞 낮은 탁자에서 여전히 과거에 배운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1) 전상인, <아파트에 미치다>, p.151-167, 2009

2) https://www.wsj.com/articles/the-man- cave-has- a-new- neighborthe-she- shed-1485885279

3) 물론 ‘보통 아빠’의 공간 또한 역사적으로 아주 줄어들었다. 집 밖의 부엌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과거엔 무려 사랑채도 가졌던 남성들이 이젠 변변한 자기 공간도 없다는 것도 옳은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필이면 '보통 엄마’를 쓰고 있어서, 아빠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4) 한편 She shed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또한 존재한다. 해당 원문의 댓글만 읽어도 그렇다. “내 집만한 차고가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라든가 “그럴 거면 왜 같이 사냐”든가 “저러다 이혼하지(각자의 집을 짓더니 이혼한 테드 터너와 제인 폰다의 사례를 들며)” 등이다. 어느 나라나 댓글로 성 대결이 펼쳐지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5) WSJ, 'The Man Cave Has a New Neighbor—the She Shed’ 댓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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