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다 모으지 못할 것만 같았던 커피숍의 스탬프를 어느 센가 다 모아서는 따뜻한 라떼 한 잔을 공짜로 주문했다. 나는 일종의 특례로 얻어낸 공짜 커피를 마시며 스탬프를 모아 온 여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략 세 계절 정도의 시간을 지나왔고, 스탬프를 수집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차가운 커피는 주문하지 않았으며, 모든 스탬프는 순전히 홀로 마신 커피로 얻어낸 것만 같다. 공을 들여 열심히 떠올려내긴 했지만, 이런 사소한 기억들을 쉽게 믿지는 않기로 한다. 시간이 꽤나 지나버린 기억들은 대부분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한 번의 계절을 더 보냈을지도 모르고, 가끔은 지나치게 더운 날씨 탓에 차가운 커피를 시켜 마셨을지도 모르며, 이따금 함께 와준 일행 덕분에 스탬프를 조금 더 수월하게 모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총 스무 개나 되는 스탬프의 발자취를 착오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실용적이지 못한 생각을 잠시 멈추기로 한다. 그 후 카페의 매력적인 통 유리창을 바라본다. 17층에 위치한 곳이라 언제나 전망이 좋다. 많은 계절이 지나는 동안 이곳의 실내 인테리어도 바뀌었고, 나도 꽤 다양한 변화를 맞이했지만 통 유리창 건너의 세상은 거의 그대로인 듯 보인다. 나는 네모난 회색 건물로 가득 찬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금 공짜 커피를 마신다. 처음보다는 적절히 식어있어 목 넘김이 좋다. 바닐라 시럽도 시나몬 파우더도 뿌려져 있지 않은 순수한 연갈색의 라떼. 쌉쌀한 맛이 과하지 않아 기쁘다. 나는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있는 커피를 재빨리 마셔낸다. 메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이온음료를 섭취하는 사람보다도 더 간절하게 남은 커피를 식도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마땅한 노력으로 얻어낸 공짜 커피는 빈 잔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적당한 허탈감을 느낀다. 카페 테이블 위에는 방금까지 공짜 커피였던 것과 완결된 쿠폰이 나란히 놓여있다. 쓸모를 다한 쿠폰은 버리지 않고, 구기듯 접어 지갑 속에 넣는다. 일종의 기념품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빈 잔은 카페 스태프에게 정중히 넘겨준다. 그러고는 카페를 떠날 준비를 하며 마지막으로 창 밖을 바라본다.
시간은 저녁 일곱 시를 넘어 여덟 시로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통유리창 너머의 하늘은 어두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리만큼 올해 여름의 낮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참 피곤한 햇빛이다. 나는 밤이 길었고 눈이 유독 많이 왔던 지난겨울을 그리워하며 카페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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