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지 못한 말이 글로 기록되다
| 유난히 수줍었던 아이
어린 시절, 엄마는 독서 논술 선생님이었다. 엄마는 집에서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독서와 역사 논술에 대해 가르쳤다. 나도 또래 친구들과 엄마의 독서 논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습지를 받고, 학습지 질문에 답하며, 친구들과 함께 한 권의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다양했다. 자기 의견을 오목조목 이야기하는 친구, 다른 친구와 의견이 대립해서 싸우는 친구, 조용히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있다가 물어보는 질문에만 대답하는 아이였다.
집에서 하는 수업이라 편안함을 느꼈지만,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면 한없이 수줍었다. ‘언제 말을 해야 하지?’ 생각하며 말할 타이밍을 보고 있다가 수업이 끝나곤 했다. 수업이 끝난 후, 나의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만 가득 찼다. 그 말은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다가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 되면 손을 거쳐 일기장에 기록되었다.
| 오롯이 글로 기록된, 뱉지 못한 말
시간이 흐를수록 하지 못한 말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그 말은 일기장에 오롯이 기록되었다. 나의 일기장에는 그 시절의 내가 담겼다. 그 시절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했던 나, 사랑을 강렬하게 원했던 나, 무언가를 잘하고 싶었던 나, 행복한 날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나, 앞으로의 날이 무서웠던 나'의 모습이 있다.
지금도 밖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나의 속마음을 일기장에 진득하게 고백하며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고 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막 써내려 가다가 ‘왜 이런 생각이 들었지?' 생각하기도 하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공감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렇게 해야만 나의 답답함이 해소가 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 방식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방식으로 나를 돌보았기 때문에 글쓰기와 친해질 수 있었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회고하는 습관을 키울 수 있었다. 더불어 일의 한 부분에 글쓰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가 친근했기에 생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