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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vs 함께, 마라톤이 알려준 나의 속도

달리기의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

by 오늘도 달리진

*마라톤을 위해 달리기

‘마라톤을 위해 달리기’시리즈는 ‘1년에 최소 2번, 최대 N번 마라톤에 나가기’ 리추얼을 하며 경험한 마라톤을 리뷰해 보는 시리즈예요.




‘이번 대회는 누구와 함께할까?’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기 전이나 대회 날을 앞두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조용히 나만의 페이스로 달릴지, 아니면 누군가와 웃고 이야기하며 달릴지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와 시간을 맞춰 나가는 일이 어려워서 줄곧 혼자 마라톤을 나가는 것을 택해왔다. 그러다 지난 4월에 마라톤을 다른 방식으로 연이어 참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 혼자 달린 마라톤 – 조용히 나를 회복시킨 ‘더 레이스 서울 21K’


4월 초,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더 레이스 서울 21K’는 혼자 참가했다. 혼자 나간 마라톤은 대회 당일 아침부터 챌린지 같다. 누군가와 함께 대회에 참가한다면 전날부터 서로의 컨디션을 확인하며 긴장을 나눌 수 있지만, 혼자 참가할 때는 온전히 나를 믿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알람을 여러 개 맞추고, 마라톤에 필요한 용품을 미리 챙기고 이동 동선을 점검하는 것도 대회 전날의 불안함을 덜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대회 당일이 되어 이른 아침에 알람을 듣고 잘 일어난 후, 피곤한 눈을 비비적거리며 대회장에 도착했다. 축제 분위기가 한껏 느껴지는 대회장에 도착하여 신이 났다. 하지만 크루별로 참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조용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혼자 뛰는 것이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웠다. 대회에 종종 혼자 참가하는 것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허전한 감정도 남겼다. 게다가 이번 대회 준비는 순탄하지 않았다. 2월 ‘챌린지 레이스’ 이후 야근이 이어졌고, 무리한 운동 탓에 허벅지 통증이 생겨 몇 주간 훈련을 쉬었다. 대회 일정조차 잊고 지냈고 배번표를 받고 나서야 “맞다, 대회가 있었지” 하고 떠올렸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대회 기록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더 레이스 서울 21K’ 기록은 지난 2월 말에 참여한 ‘2025 챌린지 레이스’ 하프 기록보다 약 10분을 단축한, 2시간 19분 55초였다. 대회를 앞두고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와서 뿌듯했다. 그리고 혼자 참여한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이 나와서 더욱 기뻤다. 사실 혼자 참여하는 마라톤은 단순히 ‘혼자’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대회 당일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뜨는 것부터, 누구의 응원 없이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모든 순간이 의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실을 안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고요한 싸움을 견뎌내면 스스로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끼게 된다.


2025 더 레이스 서울 21K


| 함께 달린 마라톤 – 교감으로 더 따뜻하게 남은 ‘영종도 선셋 마라톤’


4월 말, ‘영종도 선셋 마라톤’은 남자친구와 함께 참가했다. 축제처럼 꾸며진 대회였고 마라톤 후에는 가수 공연도 예정되어 있어 기대가 컸다. 하지만 대회 당일에는 비가 쏟아졌고 표지판이 잘 표시되지 않아서 달리는 도중에도 길을 헤매는 참가자가 많았다. 완주 후 메달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반적으로 비 오는 날씨는 대회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운동화 속까지 스며든 물기와 축축해진 옷의 감촉도 몸을 지치게 했다. 혼자 참여 했다면 짜증이 먼저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달리는 사람이 있어서 우중 마라톤을 순탄하게 완주할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달리며 나눈 이야기는 코스 전체에 고르게 스며들었다. 풀마라톤 준비 방법부터 마라톤을 좋아하게 된 이유, 음식 취향 같은 뻔한 이야기까지. 우리의 대화에는 사소하지만 낯설지 않은 주제들이 담겨 있었다. 그 대화는 비로 인해 짜증 났던 마음을 달래주었고, 달리기 페이스도 안정화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9km 정도 달렸을 쯤, 남은 1km를 더 힘 있게 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달린 마라톤의 장점은 완주 후 그날을 함께 떠올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혼자 달린다면 비와 코스, 운영의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였기에 그 모든 것은 추억이 되었고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장면으로 남았다.


영종도 선셋 마라톤


| 혼자든 함께든, 중요한 건?


4월에 두 번의 마라톤을 혼자 또는 함께 참여하며 자존감을 회복했고 추억을 쌓았다. 혼자 달릴 때는 고요함 속에서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외로움과 불안이 스치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믿고 달리는 그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반면, 함께 달릴 때는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며 걷고 뛰는 과정에서 진한 교감이 생겼고 그 속에 기억이 더 깊이 새겨졌다.


어떤 방식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순 없다. 중요한 건 그날의 내가 어떤 속도로 어떤 감정으로 달리고 있는가이다.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을 때는 '혼자'가 좋고, 누군가와 추억을 쌓고 싶을 땐 '함께'가 잘 맞는다. 그래서 마라톤은 늘 나에게 묻는다. “이번엔 어떤 감정으로 달리고 싶니?”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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