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ake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na Feb 21. 2018

카모메 식당

세상 어딜 가도 슬픈 사람과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오니기리를 처음보는 핀란드 사람들.

요 근래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 많았던 터라 머리도 식힐 겸 부담 없는 차분한 영화가 보고 싶어서 고른 게 바로 이 '카모메 식당' 이였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당당하게 오니기리를 주 메뉴로 정한 여리여리 하지만 정직해 보이는 사치에가 카모메 식당의 주인이다. 생소한 메뉴 때문인지 식당 문을 연지 한 달이 되었건만 손님을 한 번도 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사치에의 성실하고 깔끔한 성격처럼 식당은 항상 깨끗하고 따뜻하다. 손님들이 볼 수 있는 오픈 키친에 원목 테이블과 독특한 갈매기 그림의 인테리어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힐링되는 듯하다. 

핀란드의 한량 친구 

그렇게 손님 없이 파리만 날리는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던 사치에에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바로 핀란드의 한량 청년 토미!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핀란드 청년 토미는 어설픈 일본어로 사치에에게 커피를 주문한다. 그리고 사치에에게 뜬금없이 갓챠맨 주제곡을 아냐고 물어본다. 앞에 가사밖에 생각을 못해내던 사치에는 계속해서 가사를 떠올리기 위해 노래를 불러보지만 결국엔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 

그렇게 답답해하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미도리를 만나게 된다. 사치에는 용기를 내어 미도리에게 다가가 혹시 갓챠맨의 주제곡을 아냐고 물어본다. 그것을 계기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오니기리는 맛있쪙

이 영화에서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사치에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다. 사치에는 누구든 가볍게 만나지 않는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인연을 소중히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아픔과 상대방의 아픔을 치유시킨다. 이런 모습은 사치에가 식당을 운영하는 방법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치에는 손님을 돈으로만 보지 않는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친구처럼 때론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생각해 준다. 이런 사치에의 박애주의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따뜻하게 해주는 동시에 만약 내가 저 가게의 주인이었다면 정말 저렇게 사치에처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약간의 이상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게 해준다. 


시나몬롤!!! 롤롤롤 @@@

이 영화의 두 번째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음식이다. 사치에는 손님이 많이 오던 적게 오던 항상 사치에의 페이스로 조용하고 담담하지만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다. 음식이야 말로 힐링 그 자체 아닌가 싶다. 지치고 힘든 하루 끝에 먹는 밥,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간식, 아침에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의 냄새 등등 음식은 우리를 치유시켜준다. 사치에는 그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음식 중 자신의 아버지가 소풍 갈 때만 만들어 주시던 자신의 소울푸드, 오니기리를 용감하게 메인 메뉴로 정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사치에와 미도리가 같이 시나몬롤을 만드는 장면이다. 하얗고 뽀얀 밀가루 반죽 위에 보기만 해도 알싸한 향이 날 거 같은 시나몬가루와 설탕을 곱게 뿌려 야무지게 돌돌 말아준 다음, 칼로 덩어리를 나눈 다음, 새끼손가락으로 가운데를 쓱 그어준다. 그리고 오븐 안으로 넣어 구워주면 고소하고 계피의 쌉쌀한 냄새가 가게뿐만이 아니라 동네를 그득하게 채워 준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계피를 싫어한다고 해도 한 번쯤 맛을 보고 싶어 질 것이다. 

포근한 봄같은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다들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다. 그 외로움과 아픔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온 미도리나 또 다른 인연인 마사코도 일본을 떠나 언제나 여유롭고 행복하기만 일만 가득할 것 같은 헬싱키로 왔다. 하지만 그들도 곧 알게 되었다. 행복하게만 보였던 이 도시 속에서도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그리고 괴로운 사람은 존재한다는 거. 사람은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또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는다. 이런 상처와 치유의 경계선을 어루어 만지는 카모메 식당은 치유 그 자체 아닌가 싶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들쑥 날쑥한 날에 이 영화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An Unmarried Wom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