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에 대하여
동트기 전과 해지기 전에 모든 형체는 자신의 그림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그들만의 실루엣을 보여준다. 세상이 가장 밝아지기 전과 가장 어두워지기 전에만 볼 수 있는 콘트라스트.
졸린 눈 비벼가며 같이 세도나로 동행한 친구와 같이 일출을 보겠다며 숙소 밖으로 나와 어두운 길을 휴대폰 플래시 라이트로 비추며 돌길을 저벅저벅 20분가량 걸었을까? 거뭇 푸릇했던 하늘이 분홍색 온기를 띄며 해가 곧 나온다고 신호를 보내 주었다. 전날 긴 운전과 하이킹으로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해 “그냥 안 보면 안 될까...?” 하며 친구한테 징징거렸지만 단호한 내 친구는 꼭 봐야 한다며 눈도 못 뜬 나를 끌고 나오다시피 했다.
하늘색이 꼭 대림절에 나오는 분홍색과 연보라색 초 같이 물들여졌다. 그리고 그때 나온 돌산 등선들의 실루엣. 마치 어렸을 적 보았던 그림자 연극의 배경을 보는 듯했다 (물론 웅장함은 100배). 새벽의 쌀쌀한 찬 공기도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때 친구가 숙소에서 싸온 따뜻한 커피 한잔을 자신의 텀블러에서 따라주며, “것봐, 나오길 잘했잖아.”라고 뿌듯하게 말했다.
그때 그 하늘빛과 실루엣, 그리고 따뜻했던 커피는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 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