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Apr 24. 2019

아이슬란드에서는 지구를 생각한다

Day8 레이캬비크에서의 자연친화적 하루

포토 마라톤 캠프 친구들은 남쪽 해안 투어를 가고, 나는 오전에 있는 환경인식 캠프의 워크샵에 합류했다. 못 쓰게 된 티셔츠를 잘라 장바구니를 만들고 있는 참가자들 틈으로 슬쩍 끼어들어 분리수거, 텀블러나 에코백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아주 할 말이 많거든요.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너도나도 텀블러를 잔뜩 만들어서 사은품으로 나눠주고 집에 쌓아두는 것은 옳은지, 에코백도 이쯤 되면 더 이상 '에코'가 아니게 된 게 아닌지 하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자세히 기억할 수 없지만 아이슬란드는 분리수거를 상당히 엄격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하우스에서만 해도 빈 병은 따로 모아서 수거해간다고 해서 따로 모았고, 일반쓰레기와 분리수거품을 꼼꼼하게 나누어 잘 헹궈 버렸다. 사실 한국이랑 비슷한 가도 싶지만,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분리수거가 정말 엉망인 곳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매일 식사마다 남아있는 음식과 이제 먹고 남는 음식들을 꼼꼼히 체크했고, 냉장고 안에서 상해 버려지는 음식이 없도록 신경 쓰며 지냈다. 매일 쓰레기통 앞에서 냉장고 앞에서 "이건 어디에 버려야 돼?" "이거 아무도 안 먹는 거지? (내가 먹는다!)" 하고 묻던 것도 별것 아니지만 즐거운 추억. 신경 쓰며 지낸 열흘의 기억은 작은 습관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오후 일정은 Tool Library에 가는 무리와 Perlan에 가는 무리로 나뉘었다. Tool Library에서는 고장 난 물건을 가져가면 물건을 고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빌려주는 곳이라고 했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박물관 타입의 사람이라 펄란 뮤지엄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또다시 바람을 뚫고 한 시간 가량을 걸어 Öskjuhlíð Hill에 도착했다.



배낭에서 장갑을 꺼내어 각자 손에 끼고 본격적으로 쓰레기 줍기를 시작한다. 초입에서부터 아무리 봐도 소변으로 보이는 누리끼리한 액체가 꽉 찬 묵직한 페트병을 주웠다는 것 믿어지시는지... 시작하자마자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엔 쓰레기가 썩 많이 보이지 않아 '역시 아이슬란드군, 멋진 사람들은 쓰레기도 워낙 안 버려서 한 봉지는 다 채우겠나' 싶었는데 웬걸, 이런 걸 왜 여기까지 가져와서 버리는 거지 싶은 커다란 쓰레기들도 많고 담배꽁초도 많았다. 물론 관광객들이 들락거리는 장소에 이 정도면 양호하지 싶었지만서도. 중학교 때나 했던 봉사활동 이후 처음으로 직접 쓰레기를 주우며 돌아다녀보니 감회가 남달랐달까.



한 시간 가량 쓰레기를 주운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는 박물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 자연과 지형에 대한 내용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전시가 각 층에 이어졌는데, 이런저런 체험도 가능하여 꽤나 즐거웠다. 메인은 역시 빙하 동굴 체험이지 싶은데 빙하가 녹고, 녹아 떨어지는 물로 만들어진 형상들이 정말 예뻤지만 동시에 정말 추웠다. 실제 동굴은 이 정도로 춥지 않은데 인공 동굴이라 얼음이 녹을까 봐 더 낮은 온도로 설정해둔 거라고 하니, 진짜 빙하 동굴에도 가보고 싶어 졌다. 인공 빙하 동굴을 빠져나오면, 머지않아 빙하가 사라지게 될 지구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긴 시간 누적되어온 것이 인간이 '발전'을 시작한 시점부터 빠르게 사라져 간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환경오염으로 빙하가 사라져요! 하는 문구를 익히 들어왔지만 이렇게 체험하고 나면 한 발짝 더욱 현실의 것이 된다.



전시장을 다 둘러보고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면 꼭대기에 위치한 돔. 그리고 돔 창밖이 환히 보이는 카페테리아. 여기서 커피 마시면서 책 읽으면 너무 좋겠다! 해 지는 걸 보고 싶다! 하지만 너무 비싸고, 춥고, 우리는 저녁 스케줄을 위해 돌아가야 한다... 조금 아쉬웠지만 역시 너무 비싸고 춥고 혼자 돌아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옥상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빙하가 녹기 전에 다시 오자, 는 말은 조금 이상하다. 빙하가 녹지 않는 지구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일이겠지. 내가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내 다음, 다음 또 다음 세대가 되어서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빙하 동굴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조금 진부하지만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은 여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