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 기대했던 오로라 헌팅은 실패했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골든써클 투어에 가고, 비록 3년이나 전의 일이지만 날씨 좋은 봄날 골든써클 투어를 해봤던 나는 숙소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숙소에선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어서, 가져온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다가 다운받아 놓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봐도 시계의 바늘은 좀처럼 움직여있지가 않는 것이다.
남아있는 친구들과 어색하게 한 공간에서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건다. 외국인 친구들과는 배경적 공통점이 적은만큼 또 얼마든지 새로운 얘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체코에서 온 엔지니어 J에게 체코어의 발음을 배워본다. 유럽권 언어들은 모두 로마자 알파벳을 사용하면서 같은 글자를 제각각 다르게 발음하느냐고 괜히 투정도 부린다. 한글 자모를 알려주고 조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세르비아에서 온 법대생 N에게선 세르비아어 읽는 법을 배웠다. 물론 다음날이면 잊어버리고 말지만, 배우는 순간만큼은 늘 장학생이다. ABCD만 읽어도 칭찬받는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숙소가 있는 보타니컬 가든을 산책했다. 숙소에서 1분 거리 와이파이 존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빨간 노을을 좋아하는 네가 생각이 났어, 맨홀 뚜껑 사진을 찍던 너가 떠올랐어, 우리가 같이 보던 구름을 떠올렸어, 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만큼은 별것 아닌 일상도 아주 별게 되어버리니까, 그런 사소한 이유들을 핑계삼아 연락을 할 수 있게 된다.
저녁에는 오로라 헌팅에 나섰다. 북유럽, 아이슬란드라고 해서 오로라를 늘상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다행히 날씨가 맑아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소식에 어찌나 들떠있었던지. 그러나 시내에서 삼십분 가량 차로 달려 도착한 스팟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가만히 올려다본 하늘엔 오로라가 없었다. 오로라가 분명 있다고 했지만 너무 약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통해서만 연한 초록빛을 볼 수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오로라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고, 사진도 마음처럼 잘 찍을 수 없었다. 출발 직전 카메라를 떨어트리면서 렌즈 포커스 부분이 고장난 데다가 너무 추운데 바람까지 불어서 삼각대도 소용이 없고, 어차피 눈으로 보지 못한 오로라를 사진으로 찍어봐야 무슨 소용이냐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들이 그 순간에는 ‘실망'이 아닌 그저 논리적인 상황 설명 쯤이라고 하면 안 믿기려나. 충분히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실망스럽지 않았다. 7~8시 정도인데도 옆사람 얼굴도 보이지 않는 까만 어둠 속에서 친구들과 발을 동동 구르고 서서, 별이 촘촘히 박힌 까만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으로도 꽤나 즐거웠다. 가슴이 쿵 떨어지는 멋진 스펙타클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밤에 서있기까지, 나는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 멋지고 아름다운 걸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던 마음은 여행을 시작하며 점차 멋지고 아름다운 걸 보고도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지금, 멋지고 아름다운 걸, 그러니까 기대했던 오로라의 장관을 보지 못한 이 순간에도 이토록 마음이 평온하다. 여행지에서 여행자의 안경을 쓰고 마음이 너그러워졌기 때문일까, 기대했던 멋지고 좋은 것을 못 본 대신, 멋지고 좋은 마음을 조금은 가져본 것도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출렁이는 찬란한 오로라를 가슴 철렁해하며 바라보는 날도 오겠지.
지금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