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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23. 2019

얼마든지 뒤를 돌아봐도 괜찮은 곳

Day6 레이캬비크에선 모두가 걷기왕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포토마라톤 워크캠프가 시작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캠프 리더 S가 준비한 워크샵이 이어졌다. 카메라 원리와 구조 등을 배우고, 우리는 숙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벼운 실습을 했다. 모두 조금은 쭈뼛거리다가, 이내 한데모여 이런저런 실험에 한창이다. 워크샵은 꽤나 즐거웠다.



점심을 먹고 캠프에서 준비한 City Game 을 위해 레이캬비크 시내 탐방에 나섰다. 숙소가 있는 보타니컬 가든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45분 거리인데, 초행길인 데다가 춥기까지 해서 실제로 더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체감으론 정말 하루 반나절을 다 걷는 데 쓴 기분이었다. 네 명이 조를 이뤘는데, 에너지 넘치는 러시아 소녀 U와 튼튼한 체코 청년 J와 달리 나와 내 또래 홍콩 여성 W, 체형 및 체력적으로 불리(?)한 이 동양 어르신(농담입니다) 둘은 자꾸만 뒤로 쳐졌다.


한 시간만에 도착한 레이캬비크 시청엔 호수가 펼쳐져있고, 주위를 둘러싼 낮은 건물들이 예쁘게 둘러다 보인다. 하늘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다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일인지.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을 찾아갔고, Harpa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쨍한 파란 하늘 아래의 도시와 해의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어둑해진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모른 척 앞으로 걸어가다가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는 순간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공기는 매정하고 싶은 나의 등뒤를 자꾸만 잡아 당겨, 아이슬란드에서 만큼은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 구질한 집착이 아닌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당위가 된다.


Harpa 내부에서 본 창밖풍경. 마치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Sun Voyager 앞에서 체력 좋은 친구들과 찢어져 W와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로 한다. 추워서 빠르게 소진되어가는 아이폰 배터리 잔량을 황망히 바라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버스 정류장을 찾고, 버스 표 살 곳을 힘겹게 찾았다 - 근처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버스 표는 어디서 사나요?" 했더니 "바로 여기서!" 라고 유쾌히 대답해주었다. 모든 게 비싼 아이슬란드의 버스 요금은 여지없이 비쌌고 (460 크로나였으니 한화 4500~5000원 수준) 숙소 방향 버스를 찾고 또 버스의 정류장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겨우 버스를 탔는데 목적지를 말하니 버스 기사님이 "이 버스를 타도 되지만 걸어서 얼마 안 걸린다"고 하여 조금 허무해졌다. 저희 조그만 몸으로는 해도 들어간 밤거리를 거센 바닷바람을 헤치며 1시간이나 걸어갈 수 없답니다.



숙소를 코앞에 두고 보타니컬 가든 안을 뱅뱅 돌았다. 체력은 시내로 나가는 길에 이미 바닥이 나있었던 기분인데, 이대로 숙소를 찾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할 때쯤 가까스로 숙소를 찾았다. 흩어진 네 팀 모두 보타니컬 가든에 다 와서 길을 잃었다고 하니 나중에 듣고서야 재밌어서 웃음이 났다. 역시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르지.


포토 마라톤 멤버는 리더까지 총 12명이었지만, 우리의 캠프를 주관하는 단체의 리더 봉사자들과 인원이 적은 다른 캠프 멤버들까지 해서 총 17명의 인원이 열흘을 함께 지낸다. 한바탕 정신없는 이름 외우기 게임을 하다가 나는 호주에서도 미국에서도, 지난 워크캠프에서도 고집스럽게 사용해온 나의 한국이름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나는 한국에서 온 J.

잘 지내보자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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